항목 ID | GC056006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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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집필자 | 최인선 |
[정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산과 구릉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개설]
우리나라의 성곽은 국가 통치 상 행정적 기능을 갖기도 하였지만, 전략상 중요한 곳에 설치하여 외적 침입을 방어하는 데 이용되었다. 화순 지역은 지형적으로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나주시·영암군·장흥군·보성군·순천시·곡성군·담양군 등과 연접해 있고, 전체적으로 평야가 적고 산지가 많다. 높이 1,000m 이상의 산들과 그 이하 구릉성 산지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동부는 고산 지형, 서부는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또한 화순 지역은 조선 시대에 담양 도호부·장흥 도호부·순천 도호부 등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외침에 대한 대비를 산성을 여럿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순 지역의 5대 산성은 오성산성·비봉산성·금오산성·예성산성·철옹산성이다. 대부분 임진왜란과 같은 조선 시대의 잦은 외침 시 사용되다가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폐기 이후 부분적으로 성벽의 붕괴가 이루어졌지만,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인위적인 성돌의 채석으로 인한 훼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금오산성 등은 등산로로 사용되고 있어 앞으로 훼손이 커질 수 있으므로 보완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화순 지역에 위치한 산성은 지형을 이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높은 고지대에 위치하여 가파른 능선은 그대로 사용하거나 일부 토축이나 석축을 하여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한 것이다. 이는 화순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이용한 것으로 고지대에 산성을 쌓아 축성과 방어를 용이하게 한 것이다.
[현황]
오성산성은 높이 290.4m의 오성산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테뫼식 산성이다. 구체적인 축조 시기나 배경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오성산성은 화순읍에 가까운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어 유사 시 즉시 입성하여 방어나 역습 등을 할 수 있는 전형적인 배후 산성으로 판단된다.
비봉산성은 능주면과 도곡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비봉산[195.5m] 일대에 위치한 산성이다. 현존하는 비봉 산성의 모습을 살펴보면, 성의 전체 길이는 약 1.5㎞, 성곽의 최대 높이는 약 3m, 폭 3.4m이다. 비봉 산성은 목적에 따라서는 군사적인 피난성, 지형에 따라서는 산성,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내륙성, 축조 재료에 따라서는 석성, 평면 형상에 따라서는 폐합부정형성, 중복도에 따라서는 단곽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철옹산성은 동복면 안성리 신성 마을 뒷산 단애 암벽이 이어지는 높이 572.9m의 옹성산 일대에 있는 산성이다. 목적에 따라서는 군사적인 피난성, 지형에 따라서는 산성,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내륙성, 축조 재료에 따라서는 석성, 평면 형상에 따라서는 폐합부정형성, 중복도에 따라서는 복곽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성산성은 높이 362.4m의 예성산의 자연 지형을 이용한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1㎞로 보이나, 현재 남아 있는 성터의 길이는 약 10m, 높이 3m 가량에 불과하다. 예성 산성은 보성군 쪽에서 능주 지역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방어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형에 따라서는 산성,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내성, 축조 재료에 따라서는 석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금오산성은 한천면 한계리와 춘양면 경계에 걸쳐 있는 높이 544.7m의 용암산 정상부와 중턱에 위치한 둘레 약 1.5㎞의 산성이다. 금오산성은 서남쪽에 위치한 예성산성과 함께 북쪽의 능주를 방어하는 것이 주목적인 성이라고 판단되며, 지형에 따라서는 산성,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내륙성, 축조 재료에 따라서는 석정, 평면 형상에 따라서는 폐합부정형성, 중복도에 따라서는 단곽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광덕리 고성 터는 화순읍 광덕리 남산 공원에 위치한 고성이다. 광덕리는 동·북·서 세 방향을 감싸고 있고 남쪽으로만 터져 있는데 서쪽 단애를 보면 자연 구릉을 깎아내 급경사를 만들고 부분적으로 토축 내지는 석축을 한 것이 지금은 파괴된 상태로 남아 있다. 성내 일대의 밭에서 기와편·토기편·청자편 등이 발견되었는데, 삼국 시대 토기편도 확인되어 평지성 구릉을 이용한 성의 입지와 함께 축조 시기가 화순의 성곽 중 제일 앞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더 이상의 문헌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삼국 시대의 고성 터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