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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676
한자 禮城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최인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6월 - 예성산성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7년 5월 - 예성산성 전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완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4월 6일 - 예성산성 조선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12월 30일 - 예성산성 조선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완료
현 소재지 예성산성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가봉리
성격 산성
양식 포곡식
관련 인물 김대인(金大仁)|김명철(金命哲)
크기(높이,길이,둘레) 3m[높이]|10m[길이]|1㎞[둘레]
소유자 화순군청
관리자 화순군청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청풍면 경계에 있는 산성.

[개설]

산성은 산세를 따라서 산에 쌓은 성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 잘 발달되어 현재 중부 이남에만 1,200여 개의 산성터가 남아 있다. 산성은 평상시에 군창(軍倉)을 두고 여기에 곡식과 무기를 준비하여 두며, 적이 침입하여 오면 평지의 주민들을 모두 들어오게 하여 농성하는 곳이다. 지형에 따라 테뫼식·포곡식으로 구분한다. 예성산성은 포곡식으로 둘레가 1㎞로 추정되며, 현존 길이는 10m, 높이는 3m이다. 정유재란김대인(金大仁)과 김명철(金命哲)이 의병을 모집하여 성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위치]

예성산성화순군 춘양면청풍면의 경계 지점에 해당하는 높이 362.4m의 예성산 일대에 있다. 화순군 능주면에서 국도 29호선을 따라 춘양면으로 가다가 우봉교에 이르러 남쪽에 예성산이 있다. 산 정상부와 능선 상에 산성이 있다.

예성산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가파른 능선을 따라 지석천과 접하고, 남으로는 청풍면 풍암리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춘양면 가봉리와 접하고, 동쪽으로는 청풍면 풍암리 입교 마을과 접한다.

[유래]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능성현 산천조, 『동국여지지』[1656년] 능성현 산천조, 『여지도서』[1757~1765년] 능성현 산천조, 『대동지지』[1865년] 능주 성지조를 비롯하여 기타 19세기 말기 읍지들을 보면 현 남쪽 15리에 왜성산(倭城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성이 있어 산 이름을 왜성산이라고 명명했고, 수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지니고 있고, 고성의 석축 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왜성산에 있는 고성은 자연히 왜성산성(倭城山城)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인 1923년 간행된 『능주읍지』에는 왜성산이 예성산(禮聖山)으로, 왜성 산성이 예성산성(禮聖山城)으로 바뀌어 기록되어 있다. 아마 일제 당국의 강요에 의해 일본을 나타내는 ‘왜’자를 피하기 위해 산과 이름이 ‘예성(禮聖)’으로 개명되었던 것 같다. 이 예성산이 다시 예성산(禮城山)으로 한자가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정유재란충무공 이순신의 막하에서 활동하였던 김대인(金大仁)과 성 아래에서 사는 김명철(金命哲)이 의병을 모집하여 예성산으로 들어와 성을 쌓고 항전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전투에서 아군이 포위를 당해 불리해지자 왜군은 성내의 식량과 식수가 떨어지면 스스로 항복하리라고 믿고 장기적인 포위 작전을 폈으나, 아군은 식량과 식수를 미리 비축해 두어 계속적인 항전이 전개되자 결국 왜군이 후회하고 말았다고 한다. 지금 여기에는 그 전적비가 남아 있다.

[현황]

예성산성은 높이 362.4m의 예성산에 축조된 산성으로 천연적인 석벽을 이용하여 쌓았다. 동벽은 가파를 절벽을 이용하고 있는데, 천연적인 자연 지세를 이용하고 있을 뿐 별도의 성벽을 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벽은 정상부로 이어지는 가파른 능선을 따르고 있는데, 산 정상 부 능선과 절벽을 이용하여 축조하고 있다. 서벽은 예성산 정상부에서 서북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을 따라 축조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자연석을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하고 있는데, 현재 곳곳에 벽석으로 사용된 돌들이 흩어져 있다. 북벽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성벽이다. 성벽은 부분적으로 축조하고 있는데 성벽 추정선 상에 성벽의 잔해로 판단되는 석재들이 남아 있다.

건물지는 성내부 동북쪽 경사면의 약간 평탄한 곳이며, 높이 325m 지점에 해당된다. 성벽이 축조된 뒤편에 평탄한 면이 있는데 건물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주변에서 채집된 유물로는 회청색 경질 수키와 편과 갈흑색 경질 수키와 편이 흩어진 상태로 일부 확인된다.

현재 이 산성은 최대한 자연 지형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석벽의 흔적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나마 현재 석벽이 확인되는 구간도 짧고, 붕괴되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성격]

예성산성예성산의 자연 지형을 이용한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1㎞로 보이나, 현재 남아 있는 성터의 길이는 약 10m, 높이는 3m 가량에 불과하다. 성벽은 높이 270~420m 일대에 분포하지만 성벽의 파괴가 심하여 전모를 확인할 수 없으며 그 연결선만을 추정할 뿐이다. 주로 절벽이나 능선을 이용하고 작은 계곡을 감싼 것이다.

예성산성의 주재료는 거의 대부분 석재와 암벽이다. 성 돌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석을 가공하여 이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벽은 기단석을 큰 돌로 사용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돌을 사용하고 있다.

예성산성은 전라남도 보성군 쪽에서 화순군 능주면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방어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지형에 따라서는 산성,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내성, 축조 재료에 따라서는 석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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