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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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廷立 |
이칭/별칭 | 사유(士由),도곡(道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만호 |
활동 시기/일시 | 1592~1593년 - 이정립 의병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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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804년 - 전주 이씨 육충신 마애비 건립 |
활동지 | 이정립 활동지 - 함경도 안변 |
성격 | 인물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 |
[정의]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유(士由), 호는 도곡(道谷). 완창대군(完昌大君)의 9대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거의(擧義)한 이사종(李嗣宗)이다. 동생 이정추(李廷樞), 이정기(李廷機), 이정근(李廷根)은 병자호란 때 의병이다.
[활동 사항]
이정립(李廷立)[?~?]은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고경명(高敬命)이 금산성 전투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 이사종(李嗣宗)과 함께 창의하여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았다. 그 후 충주(忠州)와 양주(楊洲)에서 왜적과 싸워 수십 명을 죽였다.
양주에 있을 때 순화군(順和君)의 호위군과 만나 그 일행과 동행하여 강원도(江原道)를 거쳐 함경도(咸鏡道)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안변(安邊)에서 적을 베고 빼앗은 물건들이 많았다.
[상훈과 추모]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고 영조 때에는 정문(旌門)을 세웠다. 1864년(고종 1)에는 동몽 교관(童蒙敎官)으로 증직되었다. 1804년(순조 4)에 이사종의 후손인 이득현(李得鉉)이 화순군 동면에 전주 이씨 육충신 마애비에 글을 새겨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이사종, 이소종, 이정립과 병자호란 때 창의한 이정추, 이정기, 이정근을 추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