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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휴 투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516
한자 盟休鬪爭
영어음역 Maenghyu Tujaeng
영어의미역 Strike Figh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구완회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제천 지역 학생들이 단행한 동맹 휴학.

[개설]

1926년 순종(純宗)의 인산(因山)을 앞두고 제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은 두 차례에 걸쳐 맹휴 투쟁을 일으켰다. 1차 맹휴는 일부 부적절한 교사들에 대한 배척이 표면적인 이유였고, 2차 맹휴는 순종 황제에 대한 일본인 교장의 불경한 언동과, 제반 학사에 대한 교장의 고압적이고 비교육적인 처사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1차 맹휴 투쟁]

1926년 5월 13일 학생 대표 30여 명이 김연삼의 집에 모여 「동맹 휴학 이유서」를 등사하였다. 맹휴의 명분은 김병룡과 김영배 등 두 교사의 품행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찰에 발각되어 인쇄물을 압수당하고 관련자들이 연행되는 바람에 5월 14일로 예정되었던 맹휴 투쟁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학부모들이 나서서 관련 상급 기관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이해시키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2차 맹휴 투쟁]

1차 맹휴 계획이 있은 지 1개월 만인 6월 14일과 15일에 걸쳐서 2차 맹휴가 단행되었다. 6·10 만세 운동의 파문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6월 11일 박육경(朴六慶)과 신운경(辛雲敬) 등 학생들이 주동하여 4~6학년 학생들이 모두 수업을 거부하고 귀가하였다. 이에 교장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5~6학년 6명을 오랜 시간 취조함으로써 학생들을 격앙시켰다.

이에 6월 14일에 5~6학년 전원이 맹휴를 단행하면서 4개 항목의 명분을 내걸었다. 첫째는 교장이 순종에게 이태왕(李太王) 상[樣]이라는 폄칭(貶稱)[헐뜯어 이름하거나 또는 그런 명칭을 사용]을 사용한 것, 둘째는 학생들의 동향을 경찰에 고하여 문제 삼은 것, 셋째는 수업료를 내지 못한 학생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것, 끝으로 교사와 학생들에게 고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결국, 제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맹휴 투쟁은 식민지 교육의 상징인 교장에 표적을 맞춘 것이었다.

[결과]

경찰이 주모 학생 9명을 소환하여 밤샘 취조하자 맹휴는 전교생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군수가 나서서 학부형들과 대책을 협의하여 무조건 등교와 주모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을 합의했다. 그러나 교장은 이범학(李範學)과 김덕봉(金德奉)을 1차 맹휴 투쟁의 주모자로, 박육경을 2차 맹휴 투쟁의 주모자로 지목하여 퇴학시키고, 그 밖의 4명을 무기 정학시켜 맹휴를 탄압하였다.

[의의와 평가]

맹휴 투쟁에 참여했던 박육경이 훗날 제천청년회를 주도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제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맹휴 투쟁은 일제 강점기 제천 지역에서 사회 운동이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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