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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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屛山影堂 |
영어음역 | Byeongsannyeongdang |
영어의미역 | Byeongsan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 404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형래 |
건립 시기/일시 | 1907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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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51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51년 |
이전 시기/일시 | 1994년 |
현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 404 |
원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용하리 |
성격 | 영당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병산영당 보전관리위원회 |
관리자 | 병산영당 보전관리위원회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사곡리에 있는 개항기의 영당.
[위치]
제천시 금성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562호선을 따라 금성초등학교 가는 방향으로 2㎞ 정도 가면 사곡리 마을이 나온다. 마을 안쪽에 큰 은행나무가 있으며, 은행나무 아래에 구멍바위가 있고, 은행나무 안쪽에 동남향하여 병산영당(屛山影堂)이 위치하고 있다.
[변천]
병산영당은 1907년 4월에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가 덕산면 용하리에 창건한 용하영당(用夏影堂)이 모체가 되었다. 처음 주자(朱子)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후에 박세화가 경술국치를 당하여 절식 순절(節食殉節)한 것을 계기로 추가 배향되었으며, 그 후에 박세화의 제자 회당(晦堂) 윤응선(尹應善)도 추가로 배향되었다.
6·25 전쟁 때 소실된 후, 박세화의 제자들이 1951년 청풍면 장선리 병산곡으로 이건하고 ‘병산영당’이라 개칭하였다. 당시 건물은 목조 초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었다고 한다. 그 후 1994년 충주~금성 간 도로 개설로 인하여 철거하게 되자, 유지혁이 현재의 터를 희사(喜捨)하여 이건하였다. 이건하면서 원형이 어느 정도 보존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병산영당에는 뒤에 이 지역에서 유학자로 활동하였던 직당 신현국(申鉉國), 확재 이원우(李元雨), 해산재 양재명(梁在明), 양암 유지혁(柳芝赫)을 추가 배향하였다.
[형태]
병산영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 맞배지붕 집이다. 양 측면에는 풍판(風板)을 설치하였다. 건물 구조는 자연석 기단 위에 방형의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내부 바닥은 장마루를 깔았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하였다. 전면 가운데 세 칸에는 궁판이 있는 사분합 띠살문을 달았다. 가구 형식은 5량가, 굴도리집이다. 전면에 초익공 형식의 솟을삼문을 두고 주위로 막돌 담장을 둘렀다.
[현황]
병산영당은 1994년 이건하면서 정비되어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건물은 마을 뒷산을 배경으로 동남향하고 있다. 현재 영당 뒤로 동서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어칸 문인방 위에 박세화의 문인인 이원우가 쓴 ‘병산영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편액 작성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의의와 평가]
병산영당은 1907년 4월 용하영당으로 창건된 이후 1951년과 1994년 이건으로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여 장소적인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또한 이건하면서 원형이 어느 정도 보존되었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도 매년 향사가 거행되고 있는 사당으로서 귀중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