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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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權氏 |
영어음역 | Andong Gwonssi |
영어의미역 | Jinju G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인호 |
입향조 출생 시기/일시 | 160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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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사망 시기/일시 | 1662년 |
세거|집성지 | 충청북도 제천시 신동 |
묘소|세장지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명오리 |
성씨 시조 | 권행(權行) |
입향 시조 | 권성원(權聖源) |
[정의]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성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안동 권씨의 시조는 권행(權幸)으로, 신라 말 안동의 별장(別將)으로 있다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웠다. 권행은 본래 김씨였으나 고려 태조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은 이후 후손들이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안동 권씨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크게 번성하여 왕비 1명, 문과 급제자 338명, 무과 급제자 6명, 재상 8명, 공신 18명, 대제학 4명, 청백리 1명 등을 배출하였다.
제천의 대표적인 안동 권씨로는 송시열(宋時烈) 학맥의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1641~1721]와 옥소(玉所) 권섭(權燮)[1671~1759] 등이 있다. 권섭은 지역의 풍광을 노래한 많은 문학 작품을 남긴 이로 저명하다. 조선 후기에도 안동 권씨는 사마시 입격자와 관직자를 다수 배출하여 지역 내 유력 사족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입향 경위]
안동 권씨는 권성원(權聖源)[1602~1662]이 청풍 황강에 낙향하면서 자리 잡았다. 권성원은 안산(安山) 선향에 모셨던 아버지 권주(權霔)[1574~1626]의 묘를 청풍 수하면 명오리[현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명오리] 수월암으로 옮겼다. 그 뒤 권성원과 그의 아들 권격(權格)[1620~1671]의 묘도 근처 자리에 마련하였다. 권격의 아들 수암 권상하는 그의 나이 35세 때 황강으로 내려온 다음 평생 그 곳을 떠나지 않았으며, 송시열 학맥의 적전으로서의 지위를 지녔다. 권상하의 동생인 연잠(淵潛) 권상명(權尙明)계는 제천 신리[현 제천시 신동]에 세거지를 마련하였다. 옥소 권섭은 1691년 서울의 땅을 팔아 1693년 제천 문암동[현 제천시 신동]에 땅을 구입하였으며, 만년에는 자손들을 데리고 낙향하여 이곳에 거주하면서 큰아들인 권초성의 후손들이 남게 되었다.
[현황]
1964년 「제천군각읍면씨족별통계표」에 따르면 안동 권씨가 제천읍에 90세대 거주하였으며, 1977년 도정보고서에 따르면 제천군의 본관별 인구수로 안동 권씨는 3,522명이었다. 제천, 청풍, 한수, 봉양 등지에 집단 거주하였으며, 특히 제천시 신동[새말]에 집성촌이 있었다. 최근에는 본관 성씨별 자료를 수집하지 않아 자세한 세대수는 알 수 없으며, 2000년 자료에 따르면 제천시에는 안동 권씨가 1,171가구 3,590명이 있었다.
[관련 유적]
현재 충주시 동량면 명오리의 수월암에는 권주를 비롯하여 권성원, 권격 등 안동 권씨의 묘소가 있다.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는 송시열, 권상하, 한원진(韓元震), 권욱(權煜), 윤봉구(尹鳳九) 등의 영정을 모신 황강영당(黃江影堂)이 있다. 제천시 신동에는 옥소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으며, 후손들은 문암영당(門巖影堂)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