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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026
한자 世居姓氏
영어음역 Segeo Seongssi
영어의미역 Clans Residing for Generations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집필자 구완회

[정의]

충청북도 제천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개설]

세거 성씨는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 조선 시기의 재지 세력으로 동성(同姓) 마을[집성촌]의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과 함께 농민층을 지배하였다.

[조선 초의 토성]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성씨 집단과 지역의 관련을 토성, 망성(亡姓), 속성(續姓) 등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토착의 토성 외에 망성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버린 경우이고, 속성은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경우였다. 제천의 토성으로는 안(安)·지(智)·석(石)·강(姜)씨 등이 있고, 나(那)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린 망성이다. 청풍의 토성으로는 유(劉)·김(金)씨 등이 있고, 망성으로는 장(莊)씨가 있다. 속성으로는 단양으로부터 청풍으로 옮겨온 장(張)씨가 있다.

이들 토성은 고려 말까지만 하여도 향촌 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청풍 출신으로 왕사(王師)가 되었던 청공(淸恭) 같은 경우도 토성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조선 초의 인물로 김길통(金吉通)[1408~1473]·김순명(金順命)[1435~1487] 부자의 경우가 청풍 출신의 인물로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대부분의 토성 집단은 외침 등 사회 변동에 따라 본래의 거주지를 떠나 버리고 말았다.

[집성촌과 세거 성씨]

제천의 경우에도 재지사족으로서의 성격을 보여 주는 많은 사례가 있다. 대개의 경우 중앙의 정치적 변동을 계기로 하여 입향한 경우가 많았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입향한 성씨로는 고려 왕조가 망하면서 낙향한 경우라고 하는 의흥 박씨가 제천의 송학과 청풍 구룡리 일대에 자리 잡았고, 단종의 폐위와 유배를 계기로 입향한 경우인 한양 조씨는 제천시 신월동에, 기묘사화를 계기로 입향한 경우인 경주 이씨송학면 송한리에, 을사사화를 계기로 입향한 경우인 진주 강씨두학동에, 혼맥을 따라 입향한 것으로 보이는 칠원 윤씨는 대랑동고명동에, 새로운 터전을 찾아온 경우로 보이는 한산 이씨송학면 도화리에 자리 잡았다. 청풍 쪽으로는 유배된 단종을 따라온 경우라는 강릉 유씨제천시 금성면 활산리 일대에, 새로운 터전을 찾아 들어온 영일 정씨금성면 월림마을에, 안동 권씨는 황강과 제천의 신리에, 동래 정씨는 수산면 오티마을에 집중적으로 거주했다.

그밖에도 동성마을을 이루는 성씨 집단이 다수 있다. 강릉 김씨[금성면 사곡리], 청풍 김씨[청풍면 용곡리, 수산면 도전리], 단양 장씨[금성면 포전리], 인동 장씨[청풍면 단리], 경주 최씨[송학면 도화리], 경주 김씨[청풍면 학현리], 문화 유씨[청풍면 후산리], 영일 정씨[수산면 하천리], 신창 표씨[수산면 지곡리], 달성 서씨[덕산면 금곡리], 영월 신씨[덕산면 신현리], 합천 이씨[덕산면 신현리] 등이 있다.

[평가 및 의의]

세거 성씨는 각각 중앙 관계에서의 후광을 입고 지방 수령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서 자리를 잡은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상호간에 혼인을 통한 결속을 다지면서 일정한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였으며, 고급문화를 생산하는 주역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충주댐 건설로 인한 청풍 일대의 수몰, 그리고 인구의 도시 집중화 현상에 따라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형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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