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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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陵劉氏 |
영어음역 | Gangneung Yussi |
영어의미역 | Yeongil Je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인호 |
입향조 출생 시기/일시 | 14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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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사망 시기/일시 | 1506년 |
세거|집성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 |
묘소|세장지 |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 |
성씨 시조 | 유승비(劉承備) |
입향 시조 | 유안례(劉安禮) |
[정의]
유승비를 시조로 하고 유안례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전한(前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후손으로, 송나라 때 병부 상서를 지낸 유전(劉荃)이 고려 문종(文宗) 때인 1082년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에 정착하여 우리나라 유씨(劉氏)의 도시조(都始祖)가 되었다. 유전의 맏아들 유견규(劉堅規)의 후손들은 거창 유씨가 되었다. 한편 유전의 12세손인 유창(劉敞)이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공신에 책록되면서 그 공으로 옥천부원군[옥천은 강릉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 그 후손들이 본관을 강릉으로 하고 유전의 9세손이자 유창의 증조부인 유승비(劉承備)를 시조로 모셨다. 강릉 유씨는 주로 서울과 전라도 지역에 많이 거주하였다.
강릉 유씨는 제천시 청풍면 단리와 금성면 활산리 등으로 퍼져 나갔으나, 이들과 그 후손들은 아예 과거를 거부함으로써 족세를 유지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쇠락하게 되었다.
[입향 경위]
유안례(劉安禮)[1426~1506]가 노산군[단종]이 영월로 쫓겨나자 벼슬을 버리고 영월에서 가까운 청풍의 활산(活山)에 은거하게 되면서 제천 지역에 강릉 유씨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현황]
1964년 「제천군각읍면씨족별통계표」에 따르면 강릉 유씨가 금성면에 61세대, 청풍면에 59세대, 수산면에 51세대가 거주하였으며, 1998년 마을지에 따르면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 청풍면 단리와 장선리 등지에서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본관 성씨별 자료를 수집하지 않아 자세한 세대수는 알 수 없으며, 2000년 자료에 따르면 제천시에는 강릉 유씨가 560가구 1,716명이 있었다.
[관련 유적]
유안례는 청풍의 활산 인근 봉화대 위에 단을 설치하고 매일 아침 단종이 거처한 영월을 향하여 배례하였으며, 단종 승하 후에는 3일간 곡식을 끊고 매달 초하루에 단에 올라 제사를 지냈다. 그가 은거한 곳에서 단에 이르는 곳에 있는 골짜기를 사람들은 조왕곡(朝王谷)이라 하였으며, 단을 설치한 봉우리를 국사봉(國思峰)이라고 하였다. 유안례의 묘는 제천시 금성면 활산리에 있으며, 묘 앞 자작마을에 재실인 자장재(慈藏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