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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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思九 |
영어음역 | Hong Sagu |
이칭/별칭 | 우용(又容),하포(下浦)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우용(又容)이고, 호는 하포(下浦).
[활동 사항]
홍사구(洪思九)[1878~1896]는 제천의 장담에서 강학하던 유중교(柳重敎)가 별세한 이후에 비로소 장담에 나아갔고, 안승우(安承禹)에게서 주로 배웠다. 1894년(고종 31) 여름 스승인 안승우를 모시고 제천의 백련사에서 글을 읽다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였음을 알고 스승을 좇아 의병을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하였다.
1895년(고종 32) 말 단발령이 내려진 후 제천에서 호좌의진이 출범할 때 스승인 안승우를 좇아 함께 행동하였다. 지평의 이춘영(李春永)과 김백선(金伯善) 등이 의병을 일으켜 제천으로 달려오자 스승과 함께 의진을 좇았다.
이필희(李弼熙)를 대장으로 내세우고 전열을 정비한 의진의 주력 부대가 단양에서 관군과 맞서는 동안 홍사구는 안승우와 함께 제천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필희의 의진이 승전하였음에도 흩어진 후,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하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였다.
이때 전군장이던 안승우의 종사관으로, 안승우가 이춘영의 뒤를 이어 중군장이 된 이후로는 중군 종사로 활약하였다. 1896년(고종 33) 5월 25일, 장기렴(張基濂)이 이끄는 관군이 의병들의 근거지인 제천을 칠 때 중군장 안승우를 모시고 남산 전투에 가담하였다. 의진이 무너지고 모두 도망할 때 몸을 피하라는 스승의 말을 뿌리치고 혼자 남아서 스승의 곁을 떠나지 않고 관군에 저항하다가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