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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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代 |
영어의미역 | Ancient Tim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김범철 |
[정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원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역사와 문화.
[개설]
고대를 일컫는 데에는 역사학적·정치학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설이 있으나, 한국사에서는 흔히 원삼국(原三國)시대부터 후삼국의 병립기까지를 이른다. 원삼국시대[B.C. 1세기~A.D. 3세기경]는 삼국시대의 원초적인 단계로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성장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백제·가야·신라의 모태인 마한·변한·진한의 삼한이 있던 시기이다.
이들이 고대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는 3세기부터 신라에 의해 통일이 완성되는 668년까지의 기간이 삼국시대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북쪽의 발해와 공존하던 남북국시대와 신라가 쇠퇴하여 후백제, 태봉과 더불어 정립하던 후삼국의 혼란기를 거쳐 고려가 통일하면서 한국사의 고대는 끝나게 되었다.
[고대 문화]
진천은 옛 마한 영역에 속한다. 이후 삼국에 의해 차례로 영유되면서 그 흔적들이 다양하게 남게 되었다. 4세기 중·후반경 가장 먼저 진천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백제였다. 석장리·구산리·산수리·사양리·송두리 유적과 대모산성, 삼덕리 고분 등은 백제의 흔적을 보여준다. 장수왕대인 475년 고구려가 백제 한성(漢城)을 함락하고 한강 이남까지 진출하게 되자, 진천 지역도 고구려의 영향권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회죽리에서 발견된 금귀고리와 대모산성과 송두리 유적에서 발견된 고구려계 토기류 등은 그러한 양상의 일면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 대에는 남한강 유역이 신라의 지배에 놓이게 된다. 신라 진출의 흔적은 송두리, 교성리 남산골, 장관리, 산수리, 죽현리, 내촌리 당골 등에서 확인되는 신라계 석곽묘에서 확인된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진천은 9주 5소경 중 한주(漢州)에 편입된다[685년]. 이 시기 중요한 유적·유물로서는 진천 태화 4년명 마애여래입상[830년],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사곡리의 횡구식 석곽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