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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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金氏 |
영어음역 | Gwangsan Kimssi |
영어의미역 | Gwangsan K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김정호 |
세거지 | 진도군 지산면 관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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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진도군 지산면 관마리|진도읍 |
입향시기/연도 | 1650년대 |
성씨시조 | 김흥광(金興光) |
입향시조 | 김여용(金汝龍) |
[정의]
광산을 본관으로 하고 김여용(金汝龍)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의 세거 성씨.
[개설]
전라남도 광주 출신 김흥광을 시조로 하는 광산김씨(光山金氏)는 한국의 대표적인 가문의 하나로서 ‘광김’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광산(光山)은 현 광주(光洲)이다. 광산김씨가 조선조에 접어들어 명문이 된 것은 김주정과 같은 항렬의 김연(金璉) 집안이 충청남도 연산을 중심으로 사계 김장생(金長生)[1548~1631], 그의 아들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1574~1631] 부자가 나란히 문묘(文廟: 향교의 대성전)에 배향되고부터이다. 진도에는 지산면 관마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연원]
시조 김흥광은 신라(新羅)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서 신라왕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신라 계세(季世)에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견하고 광산현(光山縣) 서일동(西一洞)에 은둔(隱遁)하면서 광산김씨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광산김씨는 삼별초(三別抄)가 제주도를 공격할 때 희생된 제주부사 김수(金須) 이후 역사에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김수의 동생 김주정(金周鼎)의 집안을 문숙공파라 하고, 김수의 아들 김태현(金台鉉)의 집안을 문정공파라 한다.
[입향경위]
전라남도에는 주로 문숙공 김주정의 자손들이 퍼져 있다. 진도에는 임진왜란 전후에 김주정의 후손 3파가 들어왔다. 특히 진도 입향조로 알려진 27대 김여용의 아버지 김재흥(金梓興)[1624~?]의 무덤이 군내면 분토리에 있는 것을 보아 1650년을 전후로 하여 진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세거현황]
2006년 현재 진도의 광산김씨는 모두 303가구 840명이다. 주로 진도군 지산면 관마리와 진도읍에 세거하고 있다.
[집성촌현황]
진도읍을 중심으로 번져 있는 광산김씨는 김주정의 후손인 김홍복(金弘福)[1543~1605]이 장흥임씨(長興任氏)의 사위가 되어 들어오면서 집성촌을 이루기 시작했다.
또 한 집안은 관마리 쪽 집안의 형제인 김제성(金悌成)의 후손들이 이룬 집성촌으로, 의신면 쪽에 자리 잡은 뒤에 진도읍, 수유리, 소포리 등지로 번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