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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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頭- |
영어음역 | Yongdu Maeul Dongje |
영어의미역 | Yongdu Village Tutelary Festival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
집필자 | 나경수 |
[정의]
전라남도 진도읍 동외리 용두마을에서 매년 음력 2월 1일에 올리는 마을제사.
[개설]
본래 진도군 부내면에 속했는데, 진도읍성의 동문 밖이 되므로 동문밖, 또는 동문외라 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상리, 용하리, 당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외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읍성 축조 이후 장흥임씨가 입향한 후 밀양박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입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주요 성씨는 박씨와 김씨이며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쌀, 구기자이다. 마을 공동재산으로는 마을회관이 있으며, 마을조직으로는 부녀회, 상두계, 청년회가 조직되어 있다. 주요기관 및 시설로는 향토문화회관, 담배인삼공사, 수협공판장, 산림조합, 진도개시험연구소 등이 있다.
[연원]
용두마을은 마을회관에서 음력 2월 1일에 거리제를 모신다. 정월 그믐날 준비를 하여 자정 무렵이 되면 제사를 모신다. 거리제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당할머니를 모시는 제사이다.
본래 이 마을은 용두마을이라는 자연마을이 되기 전에는 진도읍 동외리에 속하는 용상마을과 용하마을 두 마을로 나뉘어 있었으며, 두 마을이 따로 큰길가에 차일을 치고 거리제를 모셨다.
그러나 30여 년 전에 통합이 되면서 한 곳에서 거리제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마을회관을 지으면서는 마을회관에 제상을 마련하여 각각 1위씩의 당할머니를 위해 메를 갖추어 제사한다.
이 마을 길가에는 두 기의 장승이 나란히 서 있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고 새겨진 콘크리트 조형물이다. 옛날에는 매년 정월 그믐날 낮에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새로 장승을 만들어 세우고 밤에 거리제를 모시면서 술을 따라두고 제사를 모셨다. 그러나 한동안 번거로워서 장승을 만들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
그러다 약 25년 전, 마을에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젊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교통사고도 많았다. 그래서 마을 노인들이 장승을 세워보자고 했다. 그래서 단절된 장승 세우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예전처럼 나무로 깎아 세웠지만, 나중에 마을 돈으로 콘크리트로 만든 장승을 구입하여 세웠다. 거리제가 끝나면 이곳에 와서 헌식을 한다.
[제관의 선정 및 역할]
제사를 모시기 사흘 전쯤 제관을 선정한다. 대개 세 명 정도 뽑지만, 요즘은 마을회관에 모이는 노인 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해 네다섯 명 정도가 참여를 한다. 마을 어른인 주성춘 할아버지는 매년 책력을 보고 생기를 가린다. 사실 가리는 것은 거의 없고 삼재(三災)에 걸린 사람만 기피한다. 주성춘 할아버지는 손수 적은 「축문철집(祝文綴集)」이라는 글을 손수 표지에 쓴 공책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 속에는 거리제 축문을 비롯하여 통과의례에 필요한 각종 축문을 적어놓았다. 그 속에 낱장으로 된 삼재를 가리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알기 쉽게 적어놓았다.
매년 위 표에 의해 삼재가 든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제관을 할 수 있다. 이장에게 삼재가 든 나이를 적어주면, 이장을 그걸 가지고 마을의 노인 분들께 가서 상의를 한다.
금년 몇 살, 몇 살을 제외하고는 제관을 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노인들 스스로가 자원을 하여 제관을 맡게 된다. 물론 삼재수가 들지 않았더라도 집안에 유고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기피를 한다.
제관은 남자만 뽑는다. 그러나 요즈음은 제물을 만드는 사람은 깨끗한 여자 분을 선정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사람 수대로 돈을 걷어서 제물을 장만했다. 태어난 지 며칠만 되어도 1인분의 제비를 내야 했다. 요즈음은 마을의 자금이 있어서 따로 제비를 걷지는 않는다. 매년 15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제수는 가능하면 많이 장만하려고 한다. 거리제가 끝나고 나서 마을 노인들을 대접하기 위해서이다.
제사를 모시기 하루 전날, 마을회관 입구에 왼새끼를 꼬아서 금줄을 치고 산에서 황토를 파가다 군데군데 놓는다. 궂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제관들은 당일 아침 목욕을 하고 나와서 마을회관에 모여 제사 시간을 기다린다.
[절차]
자정 무렵이 되면 진설을 시작한다. 집안에서 제사를 모실 때 장만하는 것과 같이 가능한 한 여러 가지 제물을 마련한다. 돼지머리는 반드시 올린다. 메는 두 그릇을 올린다. 그 까닭은 예전 용두마을로 합해지기 전에 용상마을과 용하마을에서 각기 거리제를 모셨기 때문에 합한 후에도 두 마을의 당할머니를 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제사는 초헌, 독축, 아헌, 종헌의 순서대로 진행되며, 제관에 따라 진행 순서가 더 복잡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향교에 출입을 하거나 전통적인 주자가례를 준수하는 사람이 제관이 되면 분향강신서부터 사신까지 재배를 하면서 진행을 한다.
제사가 끝나면 제상에서 골고루 음식을 조금씩 떼어서 백지에 싼다. 이것을 가지고 제관들은 장승이 서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러고 나서 옆에 땅을 파고 가져간 음식을 묻는다.
이러한 헌식이 끝나면 길을 따라 짚을 길게 깐다. 앞 사람이 짚을 깔고 가면 뒤에 따르는 사람은 ‘갈포래죽’을 그 위해 듬성듬성 떠놓는다. 죽을 떠놓으면서 마을에 살고 있는 각 성받이를 다 들먹인다. 성씨의 수만큼 거리밥을 주는 것이다.
여기서 쓰는 갈포래죽이란 거친 파래와 조를 섞어 묽게 죽을 쑨 것으로 거리귀신들에 주는 밥이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갈포래죽으로 귀신을 속인다는 말을 했었다.
헌식과 거릿밥까지 주고 나면 제관들은 다시 마을회관으로 돌아온다. 이때 마을의 노인들이 함께 회관에 모여 제상에 놓았던 음식으로 음복은 하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노인들이 마을에 모이면 넉넉히 준비해 둔 음식을 다시 내와서 대접을 한다.
용두마을에서는 사고가 자주 났는데 장승을 세운 뒤로는 사고가 줄었다고 한다. 또 거리제를 모시면서 음식을 먹다가 입이 틀어진 사례도 많다고 한다. 이때 사람들은 삼재에 든 사람이거나 궂은 곳에 갔던 사람이 모르고 왔다가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대행사]
4년 전부터는 행정기관에 맞추기 위해 양력으로 연말에 결산총회를 한다. 예전에는 거리제를 모시면서 준비한 음식을 마을사람들이 회관에서 모여 먹으면서 결산총회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5차례의 마을행사를 하고 있다. 거리제 모시기, 5월에 경노잔치, 복날에 복달음, 동지 때 팥죽잔치, 그리고 연말에 마을총회가 그것이다. 마을총회 때는 돼지를 한 마리 잡기 때문에 1백만 원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마을 총회를 제외하고는 대개 노인들을 위하는 행사이다.
예전에는 대보름에 짚으로 줄을 만들어 마을주민들이 줄다리기를 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금기]
삼재에 든 사람은 제사를 모시는 동안 제사를 모시는 마을회관 주변에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 삼재가 든 사람 외에도 개고기를 먹은 사람이나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 또는 임신을 한 사람이나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도 마을회관 주변을 꺼렸다.
한편 제관으로 일단 선정되면 삼 일 동안은 집 안에서 문밖출입을 금한다. 혹시 궂은 사람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다. 또 아는 집에 초상이 나도 문상을 가지 않는다.
[현황]
현재 주민 중에서 거리제를 모시지 말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단합이 잘 되고, 더구나 마을회관에 매일 모이는 노인들 중심으로 거리제가 모셔지기 때문에 참여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나 6·25전쟁 때도 제사를 모셨다는 말로 전승의지를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