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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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間信仰 |
영어음역 | mingan sinang |
영어의미역 | folk beliefs |
이칭/별칭 | 자연종교,민족종교,원시종교,미개종교,생활종교,민속종교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나경수 |
[정의]
고등종교와는 달리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온 신앙 일반.
[개설]
종교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고등종교와 자연종교가 그것이다. 고등종교에는 불교·기독교·회교 등이 속하고, 이들을 제외한 모든 종교적 신앙은 자연종교라고 한다.
고등종교와 자연종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고등종교를 구성하는 3대 조건을 준거로 하고 있다. 고등종교의 3대 조건으로는 교조, 경전, 전도 조직을 든다. 이들 중에서 어떤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으면 자연종교라고 한다. 특히 고등종교에서의 경전은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표상하는 기능이 있어 고등종교를 이념종교라고 하는 것에 반해, 자연종교는 생활의 필요에 의해서 자연발생적으로 기원했다는 점에서 생활종교라고도 한다. 자연종교는 일반적으로 민간신앙이라고도 부르는 바, 진도의 민간신앙은 그런 점에서 생활의 필요에 의해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신앙이라 하겠다.
[범주의 포괄성]
민간신앙은 매우 폭넓은 개념이어서 민속학에서도 한정된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진도의 민속을 예로 들면, 마을신앙, 무속신앙, 가택신앙, 어로신앙 그리고 장승·솟대·입석과 같은 신앙물 등이 모두 민간신앙에 속한다.
이처럼 직접적으로 민간신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민속도 있지만, 간접적으로 분류되는 민속도 있다. 예를 들면, 세시의례·통과의례 등 종교적 사고의 기층 위에 성립된 민속은 물론 설화·민요·속담·놀이·농악 등에서도 민간신앙적인 요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민간신앙의 범주는 매우 포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 환경과 보수성]
민간신앙은 문화의 중심부와 거리가 멀수록 많이 잔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도가 도서라는 지리적 위치는 진도 민간신앙의 보수성을 발생시킨 요인이다. 달리는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서울로부터의 원격지라는 것도 다른 지역에 비해서 민간신앙이 많이 남아 있는 요인이 된다.
[현황과 특징]
1. 마을신앙에서의 거리제
마을신앙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민간신앙적 특징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마을 수호 또는 방액적 성격이 강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도에서는 동제 자체를 거리제라고 부르는 마을이 많은 것이야말로 이러한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거리제란 길거리를 떠도는 귀신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러한 제사는 국가가 주관하여 팔관회(八關會), 불교의 수륙재(水陸齋), 유교의 여제(厲祭) 등으로 변천하여 왔다. 조선 후기에는 국가가 주도하는 경우가 없어졌는데, 진도에서는 관청 주도의 여제를 민간에 받아들여 독특한 마을 제사로 정착시켜 갔다.
이는 진도의 역사적 경험, 지리적 환경에 기인하고 있다. 수많은 전란을 겪어야 했던 역사적 경험과 바다에서 죽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 진도에는 유별나게 방액적 성격이 강한 거리제가 마을신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이다.
2. 무속에서의 단골판
진도 무속이 지닌 민간신앙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는 단골판의 존속을 들 수 있다. 진도는 무속에서 말하는 단골판이 남아 있는 최후의 지역이다. 단골판이란 한 무당이 관리하는 일정한 마을 권역을 일컫는다. 단골 무당은 자신이 관리하는 마을 내의 각 가정을 돌면서 봄·가을에 보리와 나락을 걷는다. 대신에 간단한 무속 관련 일은 무료로 해주기도 한다.
현재는 단골이 가마니를 들고 각 가정을 돌면서 보리와 나락을 걷으러 다니지만, 먼 과거로 올라가면 각 가정에서 보리와 나락을 수확하여 단골에게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신라시대의 초기 왕들을 지칭하는 거서간·마립간·차차웅 등은 모두 무당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며, 훗날의 화랑도 무당과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원래의 단골판이란 벼슬아치들이 가지고 있는 봉토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3. 다시래기에서의 통과의례
현재 국가지정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다시래기도 일종의 통과의례라는 점에서 진도 민간신앙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진도에서는 지금도 상여가 나갈 때는 다른 지역과 달리 북·장구·꽹가리·징 등의 사물을 치면서 상여소리를 하고 나간다.
보수적인 유교적 입장에서 보자면 애도를 해야 할 마당에 사물을 치면서 마치 축제인 양 설소리며 뒷소리를 하고 나가는 상여 행렬이 몹시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못마땅하다는 것이야말로 진도의 민간신앙적 특징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전국 어디에서나 상여가 나갈 때는 진도와 같은 풍습이었을 것이다. 불교·유교 등과 같은 고등종교가 강화되면서 사물을 치는 모습이 사라져갔을 것인데, 진도처럼 문화적 원격지이거나 전통문화의 보수성이 강한 곳에서는 잔존할 수 있었다.
신안 지역에서는 진도의 다시래기처럼 출상 전 상가에서 상주를 위로하는 풍속을 밤다래라고 부르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프로이트가 장례는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위한 행사라고 했듯이, 진도의 다시래기나 사물을 치는 상례 풍속은 산 사람 위주로 행해진 전통적인 풍속으로 전형적인 민간신앙의 실례인 것이다.
[의의와 평가]
진도지역의 민간신앙은 진도 고유의 역사적 경험과 지리적인 환경으로 인해 독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에서 든 사례들 외에도 가택신앙, 어로신앙, 세시의례 등에서도 진도 나름의 민간신앙적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급속한 문화적 변용 현상으로 미루어 볼 때, 진도의 민간신앙이 언제 전승의 단절이라는 형국에 놓이게 될 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