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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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忠武公碧波津戰捷碑 |
영어의미역 | Yi Chungmugong's Byeokpajin Battle Monument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집필자 | 김정호 |
성격 | 비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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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1956년 11월 29일 |
관련인물 | 이순신 |
높이 | 11m |
비두두께 | 61㎝ |
비두높이 | 6.66m |
비좌높이 | 2.72m |
비신두께 | 58㎝ |
높이 | 3.8m |
비문찬자 | 이은상 |
비문서자 | 손재형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산682-4 |
소유자 | 진도군 |
관리자 | 진도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향토유형유산 제5호 |
문화재 지정일 | 2001년 10월 30일 |
[정의]
이순신의 명량대첩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세운 비.
[건립경위]
정유재란 당시 이충무공에 의해 가장 통쾌한 승리를 불가사의하게 거둔 명량해전 승첩을 기념하고 진도 출신 참전 순절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1956년 11월 29일 건립되었다.
[형태]
비신 높이 3.8m, 폭 1.2m, 두께 58㎝이다. 비문은 시인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이 고장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썼다.
[금석문]
비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새우신 곳이 여기더니라. 옥에서 풀려나와 삼도수군통제사의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서 병든 몸을 이끌고 남은 배 12척을 겨우 거두어 일찍 군수로 임명되었던 진도땅 벽파진에 이르니 때는 공(公)이 53세 되던 정유년 8월 29일 이때 조정에서는 공에게 육전을 명했으나 공은 이에 대답하되 신에게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삽고 또 신이 죽지 않았으며 적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못하리이다. 하고 그대로 여기 이 바다를 지키셨나니 예서 머무신 16일 동안 사흘은 비 내리고 나흘은 바람 불고 맏아들 회(薈)와 함께 배 위에 앉아 눈물도 지으셨고 9월 초 7일 적선 18척이 들어옴을 물리쳤으며 초 9일에도 적선 2척이 감포도(甘浦島)까지 들어와 우리를 엿살피다 쫓겨갔는데 공이 다시 생각한 바 있어 15일에 진(津)을 옮기자 바로 그 다음날 큰 싸움이 터져 12척 작은 배로서 330척의 배를 모조리 무찌르니 어허 통쾌할사 만고에 깊이 빛날 명량대첩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