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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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宗敎 |
분야 | 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집필자 | 이영수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개설]
종교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으로, 인간 문제의 궁극적 해결에 관련을 맺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신앙 행위를 말한다. 기존 종교의 개념에서는 교조․교리․의례․교단․신도 등이 체계적인 형식을 갖춘 것만을 종교로 인정했으나, 최근에는 민간에서 의례를 중심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도 넓은 의미의 종교로 포함시키고 있다.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 존재하는 종교 현상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기성 종교로서 유교․불교․기독교(개신교․천주교), 둘째 신흥 종교로서 여호와의 증인․원불교․증산도․천도교․통일교․한국GSI, 셋째 민간 신앙으로서 무속․가신․점복․풍수 등이 그것이다.
[유교]
유교는 조선 500년 동안 인륜 도덕과 이념, 그리고 가치관 등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민중이 의지하고 인생 문제를 해결하게 할 초월적인 힘의 존재를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조선의 멸망과 함께 유교도 급속도로 그 존재 이유를 잃게 되었으며, 요즘은 시민 윤리 의식 속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천광역시에서 유교를 언급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관교동에 위치한 학산 서원(鶴山書院)이다. 학산 서원은 인천광역시 관내에서 유일한 서원이었지만, 원격(院格)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 듯하다. 1870년(고종 7)에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없어졌다. 『인천광역시사』에 의하면, 1980년도에 문화재들을 일괄 조사할 때에도 그 흔적에 대해, “학산 서원지(鶴山書院址)는 도천현(禱天峴)에서 삼호현[사모지 고개]으로 오르는 중간 길 우편에 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초석과 석계(石階), 와편(瓦片) 등이 흩어져 있었으나 현재는 밭이 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학산 서원은 서원 정리에 따라 훼철되어 없어지기 전까지 인천 지역의 학문과 교육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기관이었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인천 향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349-2 외에 자리 잡고 있다. 인천 향교의 설립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속수증보 인천 향교지(續修增補仁川鄕校誌)』를 근거로 한 구자혁의 1398년(태조 7) 설과 인근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려 인종 대에 설립되었다는 남달우의 설이 있다. 다만, 1406년(태종 6년)과 1466년(세조 12)에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다는 『인천 향교기(仁川鄕校記)』의 기록에 따라 적어도 1406년 이전에 설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병자호란으로 불탄 것을 1701년(숙종 27)에 중수하였다. 1914년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일대가 경기도 부천군으로 편제되면서 인천 향교의 명칭도 부천 향교로 바뀌었다. 당시 인천부와 부평부를 통합하여 부천군을 신설하였기 때문에 부천군 관내에 2개의 향교, 즉 부평 향교와 부천 향교 향교가 병립하면서 부천 향교가 철폐되기에 이르렀다. 1945년 해방 이후 인천 향교의 복구가 시작되어 1946년 3월 인천 향교 복구 기성회가 조직되었고, 부평 향교로부터 분리되어, 1976년 대성전, 명륜당, 삼문 등을 보수, 복원하였다. 인천 향교는 1995년 12월 인천 유생의 적극적인 참여와 인천광역시의 재정 지원을 받아 말끔하게 새 단장을 하였으며, 그 아래로 이전·복원된 인천도호부 청사[재현물]가 자리하고 있다. 매년 두 차례의 석전제(釋傳祭)와 문묘 대제(文廟大祭)를 봉행하고 있다. 1990년 11월 9일에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불교]
불교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敎祖)로 하여 부처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종교로, 한국에서 이미 1,5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신라와 고려의 문화를 지배해 온 종교로, 현재에도 많은 사람이 신봉하는 가장 한국화된 외래 종교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는 불교와 관련된 위대한 전설과 신앙의 대상이 되는 탑파라든가 불상 등의 조성이 미미한 상태이며, 만인에게 회자되는 신앙의 결사(結社)도 별로 없는 편이다. 『인천광역시사』에 따르면, 조계종(曹溪宗) 사찰로는 용화 선원(龍華禪院), 영산 정사(靈山精舍), 그리고 부용 선원(芙蓉禪院)이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산12번지에 있는 용화 선원은 1958년 승려 정전강(鄭田岡)이 창건한 선원이다. 전강 주지가 재임할 때인 1966년에 법당을 중건하고 1968년 선원을 중건하였다. 승려 수는 20명이고 신도 수는 2,500여 명이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8번지에 있는 영산 정사는 인천에서 최초로 생긴 불교 청소년 단체 전용 법당이다. 1976년 6월 1일에 승려 박정우 외에 학부형 10여 명이 힘을 합하여 인천광역시 지역의 불교 청소년들을 교화할 목적으로 창건한 것이다. 승려는 주지 1명이며 신도 수는 400여 명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636번지에 위치한 부용 선원은 인천 최초의 여승 선원이다. 1930년에 정만법·서만섭 두 승려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1979년에 승려 성육년이 법당을 중건하였다. 승려는 3명이며 신도 수는 500여 명이다.
태고종(太古宗) 사찰은 청룡사(靑龍寺)와 봉학사(鳳鶴寺), 서광사(瑞光寺) 등이 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53번지에 있는 청룡사는 1947년 양봉상이 창건하였으며, 1949년에 중건하였다. 승려는 주지 1명이고 신도는 300여 명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142번지에 있는 봉학사는 1965년에 승려 배일송이 창건하고 주지가 되었다. 승려는 2명이며 신도 수는 300여 명이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183번지에 위치한 서광사는 1947년에 승려 김고암이 창건하여 주지가 되었다. 1950년에 법당을 중건하였으며, 1970년에 2대 주지인 승려 김성관이 요사를 중건하였다. 승려 수는 2명이며, 신도 수는 500여 명이다.
법화종(法華宗) 사찰로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산38번지에 위치한 묘향사(妙香寺)가 있다. 묘향사는 1940년 승려 홍현록이 창건하고 1970년에 중건하였다. 승려 수는 2명이며, 신도 수는 400여 명이다.
그 밖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동 330번지에 수도사(修道寺)가 있다. 수도사는 1968년 5월 10일에 승려 김혜운(金慧雲)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1975년에 대법당을 중건하였다. 어느 사찰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립된 사찰로서 역사가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승려 수 10명에 신도 수 13,000여 명에 달한다.
[기독교]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유래하는 종교적 세계 해명과 구원론을 믿는 신앙으로, 크게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改新敎)로 구분할 수 있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시작한 것은 약 2세기 전의 일이다. 천주교의 공식 명칭은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 또는 로마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이다. 『한국 천주교회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프랑스인 신부 그라몽(Grammont,J.J.de)[梁棟材]에게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고 돌아온 때부터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천주교는 1791년에 신해 박해, 1866년에 병인박해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 오다가 1882년과 1866년에 맺은 조미 조약과 1886년 조불 수호 조약 등에 의해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에는 숭의동 성당, 용현5동 성당, 용현 성당, 제물포 성당, 주안1동 성당, 주안3동 성당, 주안5동 성당, 주안8동 성당, 학익동 성당 등 모두 9개의 천주교 성당이 있다. 이 성당들은 모두 인천 교구 소속이다.
개신교의 경우는 1885년에 이르러 인천을 통해 선교가 시작된다. 즉, 1885년 4월 5일에 미국 북감리 교회(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의 아펜젤러(H. G. Appenzeller) 부부와 미국 북장로 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의 언더우드(H. G. Underwood) 선교사가 인천[당시 지명은 제물포]을 통해 입국하면서부터이다.
기독교의 전래가 인천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 바로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탑이다. 이 탑은 시내 중심에서 월미도로 진입하는 해안로에 17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다.
인천 미추홀구 지역의 개신교 중에서 비교적 역사가 오래된 교회는 남인천 감리 교회, 도화 감리 교회, 동인천 교회, 등대 교회, 보합 교회, 새 인천 교회, 숭의 교회, 여명 교회, 용현 감리 교회, 은석 교회, 은혜 교회, 인천 성덕 감리 교회, 인천 순복음 교회, 인천 신광 교회, 주안 감리 교회, 팔복 교회, 풍성 교회, 하늘 꿈 교회, 학익 감리 교회, 학익 교회, 주안 장로 교회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