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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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法相宗 |
이칭/별칭 | 자은종(慈恩宗),자은법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영준 |
[정의]
고려 시대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했던 인주 이씨(仁州李氏)와 깊은 관련을 맺고 번성하던 불교 종파.
[개설]
통일 신라 때 성립되어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는 화엄종(華嚴宗)과 함께 교종의 2대 종파가 되었다. 13종(宗)의 하나이다. 중국에서 일찍이 현장삼장(玄奘三藏)이 인도에서 무착·세친(世親)의 정통 교학을 계현(戒賢)에게서 받아 당(唐)나라에 전했다. 중국의 법상종(法相宗)은 자은사(慈恩寺)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은법상 또는 자은종(慈恩宗)이라고도 불리었다. 그런 까닭으로 고려에서는 법상종이라 하지 않고 종명(宗名)을 자은종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종지는 성상(性相)을 결택(決擇)하고 제법의 실성(實性)인 진여(眞如)보다도 상상(相狀)인 현상의 고찰에 주안을 두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원측(圓測)이 당나라에 유학 가서 현장삼장에게서 유가론과 유식론을 배우고, 『유식소초(唯識疏抄)』를 저술했다. 또, 경덕왕(景德王) 때에는 진표 율사(眞表律師)가 금산사(金山寺)에서 계법과 점찰법(占察法)을 수행하고, 법상종의 종지를 보종(寶宗)·영심(永深)·신방(信芳) 등에게 전하여 법주사(法住寺)와 동화사(桐華寺)에서 크게 번영시켰다. 조선 시대 초까지 이어졌으며, 금산사를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법상종과 인주 이씨]
고려 시대에 법상종은 광종(光宗) 대에 교종이 부상하면서 균여(均如)의 화엄종에 흡수되기도 하였으나 현종(顯宗) 대에 문벌 귀족 사회의 확립과 더불어 화엄종과 함께 주류를 이루었다. 법상종은 현종이 부모를 위해 현화사(玄化寺)를 창건하고 그 본찰로 삼게 되면서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이후 법상종은 옛 인천시 남구 연수동[현재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동] 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고려 최대의 문벌 외척 세력인 경원 이씨(慶源李氏)[인주 이씨]와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리하여 한때 이자연(李子淵)의 다섯째 아들인 소현(韶顯)이 승통으로서 현화사의 주지가 되어 법상종 교단을 이끌었으며, 이자겸(李資謙)의 아들인 의장(義莊) 역시 현화사의 유력한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주 최씨(水州崔氏) 등도 법상종 교단과 깊은 인연을 맺고 경원 이씨 세력과 대립되는 입장에 있었다. 가천 박물관이 보유 중인 『초조본유가사지론』은 옛 법상종 승려들이 공부하던 대표적 한문 경전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