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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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영준 |
[정의]
고려 시대 인천광역시 지역의 옛 이름.
[개설]
인주(仁州)는 인천의 옛 이름으로, 고려 인종 때 어머니 순덕 왕후(順德王后)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과거 숙종 때 소성현(邵城縣)을 경원군(慶源郡)으로 승격시킨 것을 다시 승격시킨 것이었다. 이후 인주라는 명칭은 이자연(李子淵)[1003~1061], 이자겸(李資謙)[?~1126] 등 고려 전기 외척으로서 세도를 휘두른 이른바 인주 이씨(仁州李氏)들의 본관이 되었다. 아울러 조선 태종 때 전국의 군현의 이름 중에서 주(州)로 불리던 것을 산(山) 혹은 천(川)으로 바꿀 때, 지금의 지명인 인천(仁川)이 되는 단초를 제공한 지명이기도 하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인종 때 어머니 순덕 왕후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경원군을 인주로 개칭하고 지주사를 두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제56권 지 제10 지리1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仁州 本高句麗買召忽縣[一云彌趍忽] 新羅景德王改名邵城爲栗津郡領縣 顯宗九年 屬樹州任內至肅宗朝以皇妣仁睿太后李氏內鄕陞爲慶源郡仁宗時以皇妣順德王后李氏內鄕改今名爲知州事 恭讓王二年 陞爲慶源府.[王初卽位賜州戶長紅鞓] 有紫燕島三木島龍流島屬郡一縣一.
[내용]
인주는 원래 고구려의 매소홀현(買召忽縣)[미추홀(彌趨忽)이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이 소성(邵城)으로 고쳐서 율진군(栗津郡)의 관할 하에 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에 수주(樹州) 관하에 소속시켰으며, 숙종 때에 어머니[皇妣] 인예 태후(仁睿太后) 이씨(李氏)의 내향(內鄕)이라는 이유로 경원군으로 승격시켰으며, 인종 때에 어머니[皇妣] 순덕 왕후 이씨의 내향이라는 이유로 지금의 명칭으로 고쳐서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 공양왕 2년에 경원부(慶源府)로 승격시켰다.[왕이 즉위한 초년에 이 주의 호장(戶長)에게 붉은 가죽 띠를 주었다.] 자연도(紫燕島), 삼목도(三木島), 용유도(龍流島) 등이 있으며 본 주에 소속된 군이 1개, 현이 1개 있다.
[변천]
인주는 고구려 때는 매소홀현이었고, 신라 경덕왕 때 소성현이 되어 율진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는 수주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고려 숙종 때 경원군으로 승격되었으며, 인종 때 비로소 인주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1390년(공양왕 2)에 경원부로 승격되었다가, 조선이 들어서자 1392년(태조 원년)에 다시 인주로 강등되고 1413년(태종 13)에 군현의 이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으로 인천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459년(세조 5)에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의의와 평가]
인주라는 이름은 한때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속해 있었던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동에 근거를 둔 이허겸(李許謙), 이자연, 이자겸 등 고려 전기 중요한 외척 세력인 인주 이씨들의 본관 이름이다. 이들 인주 이씨로 인해 하나의 현에 지나지 않았던 소성이 군으로 승격되고 다시 주로 승격된 것은 인천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주라는 명칭은 태종 때 군현 명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으로 주급(州級)의 지명들이 현재의 지명들로 바뀔 때 인천이라는 지명으로 바뀌게 되는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