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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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芳友 |
영어공식명칭 | Yoon Bangwo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정원 |
출생 시기/일시 | 1896년 3월 2일 - 윤방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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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3일 - 윤방우 밀양 3·13 만세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4일 - 윤방우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대 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27년 2월 13일 - 윤방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11월 - 윤방우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내이동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 |
활동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윤방우(尹芳友)[1896~1927]는 1896년 3월 2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서 태어났다. 1914년 김양이(金襄伊)와 결혼하여 윤영수(尹永守)[1915년생], 윤영순(尹永淳)[1918년생]의 두 아들을 두었다.
[활동 사항]
윤방우는 농업에 종사하면서 밀양에서 윤치형과 윤세주 주도로 일어났던 3·13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윤치형·윤세주는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을 보고 돌아온 후, 밀양 지역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몰래 가져와 「독립선언서」를 수천 매 등사하고, 태극기를 수백 매 만들어 숨겨 두며 3월 13일 밀양 장날에 독립 만세 시위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윤방우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준비된 물품을 품 속에 숨기고 밀양공립보통학교 앞 밀양장터에 모인 1,000여 명의 군중 속에 파고들어 오후 1시 30분경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기를 펼쳐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크게 읽어 나갔다. 동지들을 위시한 수천의 군중들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조선독립만세”를 함께 외쳤다. 그러나 밀양 주재의 헌병과 경찰, 부산헌병수비대에 의하여 시위대는 해산되고 만세 시위 주모자들은 검거되었다. 윤방우는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의 죄목으로 태(笞) 90대를 받았다. 윤방우는 1927년 2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윤방우에게는 2002년 8월 15일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