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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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輔殷 |
영어공식명칭 | Yoon Boe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정원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3월 22일 - 윤보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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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3일 - 윤보은 밀양 3·13 만세운동 참가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4일 - 윤보은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월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7월 18일 - 윤보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2년 - 윤보은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내이동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 |
활동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윤보은(尹輔殷)[1898~1945]은 1898년 3월 22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내이동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사항]
윤보은은 농업에 종사하면서 1919년 3월 13일 밀양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3일의 만세 운동은 고종 장례식을 참관하기 위하여 서울에 간 윤치형·윤세주가 만세 시위를 목격하고 밀양으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윤보은은 윤치형·윤세주·정동찬·권재호·김소지·박만수 등과 함께 3월 13일 밀양 읍내 장날을 거사일로 결의하면서 시위 실행 연판첩에 서명하였고, 밤을 새워 수백 장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 오후 1시 30분 무렵, 윤보은은 밀양장에서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과 태극기를 수천 명의 군중에게 배포하며 조선의 독립을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군경의 탄압으로 시위 대열은 해산되었고 윤보은 등의 주모자는 일본 헌병에 붙잡혔다.
윤보은은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받고 부산교도소에서 4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윤보은은 1945년 7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윤보은은 2002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