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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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魯西遺稿 |
영어음역 | Noseoyugo |
영어의미역 | Collected Works of Yun Seong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찬 |
성격 | 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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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윤선거 |
저술연도/일시 | 1669년 |
간행연도/일시 | 1712년 |
권수 | 26권 |
책수 | 13책 |
가로 | 15.4㎝ |
세로 | 20.6㎝ |
표제 | 魯西先生遺稿 |
간행처 | 노강서원(魯岡書院) |
소장처 | 규장각 |
소장처 주소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 56-1[관악로 1] |
[정의]
1712년(숙종 38)에 간행된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학자 윤선거의 문집.
[편찬/발간 경위]
윤선거(尹宣擧, 1610~1669)의 문집은 아들 윤증(尹拯)이 직접 정리하고 편차하여 1712년에 노강서원(魯岡書院)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당시 기휘(忌諱) 사항이었던 윤휴와 관련된 글들은 모두 별집(別集)으로 모아 따로 편차하였다. 그 외에 속집(續集), 부록(附錄)도 수록 내용을 살펴볼 때 원집(原集)과 같은 시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서지적 상황]
현재 전해지는 본집의 목록(目錄)에는 속집과 별집의 내용이 없고 원집 바로 뒤에 부록이 있으며, 세계도(世系圖)가 부록의 첫머리에 붙어 있는 등 실제 구성과 내역이 약간 다르다. 이는 판본의 훼판(毁板)과 개간(改刊)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인 것 같다. 본집은 현재 규장각(奎5324), 장서각(4-5854), 국립중앙도서관(승계古3648-文61-35),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원집 20권, 속집 3권, 별집 1권, 부록 2권으로 총 26권 13책이며, 목판본이다. 권수제는 ‘노서선생유고(魯西先生遺稿)’, 판심제는 ‘노서유고(魯西遺稿)’이다. 계선형태는 이어진 계선이다. 장정법은 선장본, 지질은 닥종이, 어미는 상하화문어미(上下花紋魚尾),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반곽 크기는 가로 14.4㎝, 세로 19.8㎝이다. 행수는 10행, 한 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구성/내용]
원집 권1~2는 시(詩)이다. 총 330여 수로 시체(詩體)에 관계없이 연도순으로 수록하였는데, 내용은 주로 형제와 유계(兪棨), 송시열(宋時烈), 이유태(李惟泰) 등 교분이 깊었던 사람들과의 차운시나 스승인 김집(金集)을 비롯하여 유계, 조익(趙翼) 등에 대한 만시(挽詩)이다. 권2에는 1664년(현종 5) 금강산과 관동(關東)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시 등이 실려 있다.
권3~4에는 1653년(효종 4) 자의(咨議)를 사직한 상소, 1636년(인조 14) 윤선거가 강화도에 있을 때 심희세(沈熙世)·이시중(李時中)·이장영(李長英)·이정영(李正英)·윤성(尹城)·김익겸(金益兼) 등과 함께 연명하여 검찰(檢察)을 통진(通津)·김포(金浦)·부평(富平)·인천(仁川)·안산(安山)·남양(南陽) 등의 수령에게 보내어 병사를 모은다면 포위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강도상분사서(江都上分司書)」 등 38편의 상소가 연도별로 수록되어 있다.
권5~12에는 총 270여 편의 편지가 실려 있으며, 문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편지의 수신자는 스승인 김집, 송시열, 송준길(宋浚吉), 유계, 이유태, 권시(權諰), 정양(鄭瀁), 박세채(朴世采), 형제와 자제들이다.
권13에는 「후천도설(後天圖說)」과 그에 대해 유계와 왕복한 편지가 실려 있다. 권14에는 외조부인 성혼(成渾)에 대한 글과 김집, 김상헌(金尙憲) 등에 대한 유사(遺事)가 실려 있다. 권15에는 1652년 4월부터 1657년 4월까지의 일기가 실려 있는데, 1655년 12월 강화도의 치욕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부분과 1657년 윤휴와 강화도의 일에 대해 문답한 부분은 효종(孝宗)을 모함하였다고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권16은 설(說), 기(記), 서(序), 발(跋), 상량문(上樑文), 통문(通文)들로 조카 윤식(尹拭)과 유계의 아들인 유명필(兪命弼)의 자설(字說), 돈암서원(遯巖書院)과 임피서원(臨陂書院)의 상량문(上樑文), 아들 윤증과 윤추(尹推)의 혼인 때 지은 납폐서(納幣書) 등이 실려 있다.
권17~20은 제문(祭文), 묘지문(墓誌文), 행장(行狀)이다. 제문은 중형(仲兄) 윤순거(尹舜擧)의 제문 등 모두 27편이 실려 있다. 묘지(墓誌) 10편은 대부분 친족의 것이며, 행장은 절친했던 벗인 유계의 행장이 1권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권20에는 김면(金沔), 권준(權儁), 윤집(尹集), 윤곤(尹坤)의 행장이 실려 있다.
속집(續集)의 권1은 시(詩), 소(疏), 서(書)이다. 65편의 시가 창작시기 순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만시(挽詩)이다. 소는 1660년부터 1662년까지의 사직소(辭職疏)와 1665년과 1666년 현종(顯宗)이 온천에서 소명을 내린 것에 대한 대죄소(待罪疏)이다. 서는 송시열, 송준길, 권시와 아들에게 보낸 것이다. 이 중에서 「답권사성(答權思誠)」은 1658년 대궐 아래 나아가 소를 올린 자신의 뜻을 친구이자 사돈인 권시에게 토로한 것인데, 내용 가운데 ‘작금일지두거(作今日之杜擧)’란 대목이 효종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권2의 「서송강사정변후시송이제익(書松江邪正辨後示宋李諸益)」은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대한 글이며, 「양선생사우록목록(兩先生師友錄目錄)」은 성혼과 이이(李珥)의 문인록(門人錄)이다. 그 밖에 통문과 제문, 단편적인 일기 7조목이 실려 있다. 권3에는 1664년 윤순거와 함께 관동 일대를 유람한 것을 기록한 일기인 「파동기행(巴東紀行)」이 실려 있다.
별집(別集)은 1권으로 시 17편, 서(書) 15편, 일기 3조가 수록되어 있다. 시는 송시열, 윤휴 등과 수창한 시이다. 「의답송영보(擬答宋英甫)」는 일명 기유의서(己酉擬書)로 불리는 편지로, 1669년 윤선거가 죽기 직전에 윤휴의 문제로 송시열에게 보내려다 그만두었는데, 후에 아들 윤증이 송시열에게 저자의 묘도문을 부탁하면서 보여 주어 결정적으로 불화를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또한 윤휴와 주고받은 편지 4편이 실려 있는데, 당시에 기휘(忌諱)하던 것이었기에 시와 아울러 별집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일기 3조도 모두 윤휴와 관련된 글로 윤휴가 윤선거의 후천설(後天說)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 등을 인정하는 내용들이다.
부록상에는 아들 윤증이 편차한 연보와 유사(遺事), 강화도에서 순절(殉節)한 부인 이씨의 유사가 실려 있다. 부록하에는 1673년 박세채가 지은 행장, 윤원거(尹元擧)가 지은 묘표음기(墓表陰記), 제문, 만사(挽詞)가 실려 있다. 뒤에는 윤선거가 배향된 노강서원과 신곡서원(新谷書院)의 제문이 실려 있다. 마지막에는 노서선생세계도(魯西先生世系圖)가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노서유고』는 당시 정계의 의식구조와 동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자료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