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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030
한자 金集敎旨
영어의미역 Kings' Appointment Letters of Worshipping of Gim Jip at Confucian Shrine
이칭/별칭 「김집 교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267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성봉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7년 12월 30일연표보기 - 김집교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집교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교서
관련인물 김집
발급자 현종
수급자 김집
발급일시 1661년연표보기
소장처 광산김씨 문경공파 종중
소장처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267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광산김씨 문경공파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1661년(현종 2) 김집의 효종 종묘 배향을 명하는 교서.

[개설]

김집(金集, 1574~1656)의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세거지는 충청남도 연산(連山)이며,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8세에 송상현(宋象賢)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나 학통은 아버지 김장생(金長生)의 가학을 이어받았다. 18세 때 진사에 2등으로 합격하였으나 문장학을 좋아하지 않고 성현의 학문에 전심하였다. 1610년(광해군 2)에 헌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은퇴하였다. 인조반정 후 부여현감을 거쳐 임피현령(臨陂縣令)·사헌부지평·사헌부집의·공조참의(參議) 등을 역임하였고, 인조 중기에 공서파(功西派)가 집권하자 퇴직하였다

효종 초에 공조참의를 거쳐 이조판서에 올랐다. 당시 조정은 김자점을 축으로 하는 공서파(功西派)와 재야의 기풍을 가지고 중앙 정계에 진출한 청서파(淸西派) 계열의 산당(山黨)이 대립하고 있었다. 김집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산당의 거두로 추앙되었으나, 대동법 시행을 둘러싸고 김육과 불화가 일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이이(李珥)의 학문을 계승하여 예학(禮學)을 일으킨 아버지 김장생의 학문을 더욱 발전시켰고, 그 학문을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이유태(李惟泰) 등에게 전하여 기호학파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형태]

가로 506.5㎝, 세로 84.5㎝ 크기의 한지에 세로로 47줄, 총 464자가 쓰여 있다.

[구성/내용]

김집교지에는 훌륭한 가문과 인품을 찬양하고, 김집의 학문 경지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경지이므로 문묘에 배향함이 합당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김집교지는 매우 희소한 자료로서 조선 중기 김집의 학문적 위치와 문묘 배향의 선정 배경을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87년 12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9.24 [구성/내용] 내용 수정 효종 문묘에 배향함->문묘에 배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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