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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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應貞 |
영어음역 | Gang Eungjeong |
이칭/별칭 | 공직(公直),중화재(中和齋)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수연 |
성격 | 유생|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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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 |
성별 | 남 |
본관 | 진주 |
[정의]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유생이자 효자.
[가계]
자는 공직(公直), 호는 중화재(中和齋).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의(姜毅)이다.
[활동사항]
강응정은 부모에 대한 효가 지극하여 1470년(성종 1) 효행으로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이를 사양하였다. 1483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 유생으로 김용석(金用石), 신종호(申從濩), 박연(朴演), 손효조(孫孝祖), 정경조(鄭敬祖), 권주(權柱) 등과 향약(鄕約)을 만들었으며『소학(小學)』을 강론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3년 동안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고, 심지어 변을 맛보며 병의 상태를 가늠하며, 향불을 피워 하늘에 기도하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5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강응정의 효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강응정의 어머니가 병석으로 누워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생전 처음으로 들어 보는 ‘을문이’라는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하지만 당시는 엄동설한으로 고기를 구하기도 힘들어 정한수를 떠놓고 정성을 다해 빌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하늘에 빌기를 얼마 후,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소나기가 오더니 물고기 한 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강응정은 얼른 그 고기를 주워다가 배를 갈라 고깃국을 끓여 드리고 알과 내장은 인근 인천리 냇가에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버린 알들이 부화되어 채운면 인천리 냇가와 저수지 사이에 서식하게 되었고, 그 후 사람들은 이 고기를 가리켜 ‘강효자 고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성종이 친필로 ‘효자성균생원강응정정려(孝子成均生員姜應貞旌閭)’를 써서 내렸다. 원래 은진현(충청남도 논산시 부창동·우암동·강경읍·연무읍·은진면·가야곡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에 강응정을 배향하는 갈산사(葛山祠)가 있었으나 1713년 가야곡면 산노리로 터를 옮겨 효암서원(孝巖書院)으로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