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2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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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巖書院 |
영어음역 | Hyoam Seow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 22-5[덕은로470번길 18-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효암서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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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효암서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서원 |
양식 | 전학후묘식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3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 22-5[덕은로470번길 18-6]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위치]
가야곡면소재지에서 산소지를 거쳐 연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4.5㎞ 가면 산노리 효암서원 앞에 이른다. 서원 입구 오른쪽에 강응정 정려가 있다
[변천]
효암서원의 전신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가야곡면 두월리의 갈산사로서, 1713년(숙종 39) 현재의 자리인 산노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당시 갈산사는 중화재 강응정을 모신 서원이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우암 송시열이 현 위치에 재건한 것이었다.
이후 서익, 양응춘, 김문기, 김성휘, 김필태, 남준을 배향하였으나 위차(位次) 문제로 인해 서익은 1867년(고종 4) 행림 서원을 건립하며 퇴위하였고, 나머지 6인을 모시게 되었다. 1867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25년 복원되었다.
[형태]
마을과 조금 떨어진 구릉지에 갈마산을 배산으로 서남향인 인좌 신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지금은 외삼문 앞 동쪽으로 강응정 정려가 있다. 효암서원은 크게 사당과 강학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현재는 강학 공간인 강당이 있고, 재실은 빈 공간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1고주 5량가 구조에 겹처마 맞배지붕 양식이며, 평면상의 앞면 1열에는 퇴칸을, 뒷면 2열에는 내부 공간을 만들었다.
[현황]
효암서원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유림들의 보호, 관리를 받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0일과 9월 10일에 향사를 거행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효암서원은 행림 서원이 건립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서원으로, 행림 서원은 효암서원에 배향되어 있던 서익과 김성휘와의 위차 문제로 인해 건립된 것이다. 이 자료는 서원이 건립될 때 다른 서원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례이며, 서원 내에서도 갈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