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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527
한자 金炯元
영어음역 Gim Hyeongwon
이칭/별칭 석송(石松)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이시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인|언론인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
성별
생년 1900년연표보기
대표경력 공보처 차장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시인이자 언론인.

[활동사항]

김형원은 1900년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였다. 언론인으로서 김형원의 행적을 보면, 1920년대 『동아일보(東亞日報)』와 『조선일보(朝鮮日報)』의 기자를 거쳐 『동아일보』 사회부장, 『중외일보(中外日報)』·『조선일보』·『매일신보(每日新報)』의 편집국장을 역임하였다. 광복 후 복간된 조선일보사에 잠시 근무하였고, 이범석(李範奭)의 민족청년단에서 활동하다가 『대동신문(大東新聞)』 부사장을 지냈다. 1949년 공보처차장에 재임 중 ‘서울신문반정부이적행위사건’과 관련되어 물러났으며 1950년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

한편 문학인으로서 김형원은, 1920년『개벽(開闢)』을 통해 등단하여 1922년에는 40여 편의 창작시와 6편의 번역시를 발표하였다. 특히 『개벽』 1922년 7월호에 미국의 민중시인 휘트먼(Whitman, W.)을 소개하였으며, 그의 영향을 받아 대표작인 「아 지금은 새벽 네시」를 『개벽』1924년 11월호에 발표하였다. 1920년대 초 특정 동인지에 참여하지 않은 채 활동하다가 1923년 프로문학단체인 파스큘라(PASKYULA)에 가담했지만 파스큘라가 염군사(焰群社)와 결합하여 카프(KAPF)가 되었을 때는 가담하지 않았다. 이후 「불순의 피」를 발표하였으며 문예지 『생장(生長)』을 주재하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대표적인 시로 「아 지금은 새벽 네시」, 「불순의 피」, 「무산자의 절규」, 「생장(生長)의 균등」, 「생명의 썩은 내」 등이 있다. 김형원의 시는 사상적으로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사회제도 및 역사의 구속에서 탈피할 것을 지향하였다. 또 형식적으로 여성적 시풍에 맞서 남성적이고 힘있는 시를 선호했으며, 시작 태도에 있어서도 기존의 형식과 양식을 거부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여 개성의 적나라한 표현이야말로 좋은 시의 요건이라고 주장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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