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5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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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伯純 |
영어음역 | Yi Baeks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 236[대둔로1189번길 58-9]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시경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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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 236[대둔로1189번길 58-9] |
성별 | 남 |
생년 | 1885년 5월 9일 |
몰년 | 1950년 4월 18일 |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이백순은 1885년 5월 9일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 236번지[대둔로1189번길 58-9]에서 출생하였다. 서울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가 일제의 압력이 거세짐에 따라 퇴직하고 1914년 고향인 충청남도 논산 지역으로 돌아왔다. 이백순은 논산 지역으로 돌아와 학당을 세워 청소년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애국정신을 고취시켰다.
1919년 3월 독립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여 가자 논산 지역에서도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손필규·김태오·이근옥 등과 결의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독립 만세 시위를 1919년 3월 12일 논산읍내에서 벌이기로 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오후 3시경 강경 지역에서 학생 100여 명과 군중에게 준비해 두었던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 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강경 지역에서 시작하여 논산읍내로 이동하였고, 이때 논산읍내의 군중이 합세하면서 시위대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독립 만세 시위대를 일본 경찰은 실탄을 발포하는 등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이백순은 무력 진압에도 체포되지 않자 1919년 3월 12일 밤 다시 독립 만세 운동을 펼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주동자 체포에 본격적으로 나선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시위 주동자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백순은 1950년 4월 18일 65세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