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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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신랑이 죽었다는 편지를 받고 통곡하는 진주 처녀의 비극적 애환을 노래한 서서 민요. 「강남땅 강 선부」는 부녀자들이 주로 음영하듯이 가창하는 서사 민요이다. 혼인 전에 강남땅 강 선비[강 선부]가 죽었다는 부고를 받은 진주 처녀[진주 애기]가 상심한 가운데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 슬픈 현실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부녀요이다. 혼자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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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대산동 교리댁(大山洞校理宅)은 조선 영조 때 영해부사(寧海府寧)를 거쳐 사간원(司諫院) 사간(司諫)·사헌부(司憲府) 집의(執儀) 등을 지낸 이석구(李碩九)가 지은 집이다. ‘교리댁’이란 창건주 이석구의 후손 이귀상(李龜相)이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를 지내 붙여진 이름이다. 이귀상은 1882년(고종 19) 정시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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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대산동 월곡댁(大山洞月谷宅)은 20세기 초반에 건립된 민가의 양식과 특징을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월곡댁’이라는 집의 이름은 창건자 이전희(李銓熙)의 부인이 성주군 초전면의 월곡동에서 시집온 것에서 연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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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종택. 대산동 한주 종택(大山洞寒洲宗宅)은 성주군의 전통 살림집으로 동곽댁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이승희(李承熙)[1847~1916]를 비롯하여 여러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유서 깊은 저택이다. 대산동 한주 종택에서 태어나 성장한 성리학자 한주 이진상(李震相)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이진상의 아들로 제자인 대계(大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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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출신으로 19세기 내우외환의 격동기에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한 학설을 정립하여 한주학파를 형성케 한 학자.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1818~1886]은 19세기 내우외환(內憂外患)의 격동기에 경상북도 성주에 거주하며 성리학 및 경학을 면밀히 탐구하여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진상은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한 학설을 성립하여 자신의 학문을 계승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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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서 무비 진사와 까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무비 진사와 은혜 갚은 까치」는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사는 성주 이씨(星州李氏) 정언공파 후손인 이달우라는 진사(進士)가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새끼 까치를 구하자, 까치가 죽어 가는 이달우를 살려 은혜를 갚았다는 보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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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여성들이 길쌈할 때 부르는 소리. 「물레 소리」는 1980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7-4에 수록되어 있다. 1979년 6월 7일 처음 채록되었으며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2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1동[현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2동[현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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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서 뱀 신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뱀 신랑의 슬픈 운명」은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뱀의 형상을 가지고 태어난 뱀 신랑이 이웃의 부잣집 셋째 딸에게 장가를 갔으나, 허물을 잘 보관하라는 금기를 지키지 못하여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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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성주 극와 고택(星州極窩古宅)은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고, 건립된 지 약 30년 후에 극와(極窩) 이주희(李澍熙)[1866~1946]가 가옥의 주인이 되었다. 집 이름은 이주희의 호를 따서 ‘극와’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주희의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덕향(德享), 호는 극와이다. 송병선(宋秉璿)의 문인으로, 진주목사(晉州牧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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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성주 대산리 도동댁(星州大山里道東宅)을 건립한 이기상(李驥相)[1826~1903]의 자는 치천(穉千), 호는 민와(敏窩)이다. 사촌 형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을 좇아 학문을 익혔으며, 1855년(철종 6)에 생원시(生員試)에 장원 급제한 후 통례원 인의(通禮院引儀)를 지냈다. 덕기(德器)가 온화하고 인정이 두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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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성주 대산리 진사댁(星州大山里進士宅)은 건립 당시에는 ‘예안댁(禮安宅)’으로 불렸다. 이는 성주 대산리 진사댁을 처음 지은 이문상의 부인 진성 이씨(眞城李氏)가 예안 지역 출신이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현재 소유자의 선조인 이국희(李國熙)[1868~1939]가 살림을 내면서 성주 대산리 진사댁을 매입하여 이주하였는데, 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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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성주 대산리 하회댁(星州大山里河回宅)은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37[대산리 410번지] 성주 한개 마을에 있다. 성주 한개 마을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광대걸 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으로 대산동 교리댁(大山洞校理宅)과 성주 응와 종택(星州凝窩宗宅), 성주 대산리 도동댁(星州大山里道東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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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개항기 서당. 성주 삼봉서당(星州三峰書堂)은 조선 후기 성주 지역의 유학자 한주(寒州) 이진상(李震相)[1818~1886]을 향사한 서당이다. 서당이 있는 자리는 본래 이진상이 노년에 거처할 정자를 짓기 위해 마련해 둔 땅이었으나, 이진상이 죽은 뒤 주문팔현(洲門八賢)을 중심으로 성주 지역 유림(儒林)이 이진상을 기리기 위해 서당을 세웠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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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종택. 성주 응와 종택(星州凝窩宗宅)은 처사(處士) 이이신(李爾紳)과 사도 세자(思悼世子)의 호위 무관이었던 아들 이석문(李碩文)이 1721년(경종 1)에 터전을 잡은 곳이다. 억울하게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 세자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이석문이 북쪽으로 문을 낸 것에서 유래하여 북비 고택(北扉古宅)으로도 불린다. 무신으로서 사도 세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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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묘당. 성주 첨경재(星州瞻敬齋)는 성산 이씨(星山李氏)의 묘당이다. 성산 이씨 집성촌인 성주 한개 마을의 뒤쪽 영취산(靈鷲山) 불메동에 성산 이씨의 조상 묘소들이 있는데, 이 묘소들에 대한 묘제(墓祭)를 지내기 위해 건립하였다. 따라서 성주 첨경재 건물은 가묘의 사당이 아니라 산소의 묘당이다. 첨경(瞻敬)은 ‘묘소를 우러러보는 위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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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 지역에서 신부가 친정에 신행 가는 여정을 노래하는 민요. 혼인하는 날부터 근친(覲親) 와서 친정어머니와 상봉하는 과정을 자세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양반 부녀자들 중심으로 음영된 서사 형식의 여성 민요로, 혼인한 후 신부가 친정으로 신행 가는 풍속이 잘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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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의 응와 종택에서 음력 8월 2일 거행되는 불천위 제사.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2]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1738~1816]의 문인이다. 이원조는 18세 때인 1809년(순조 9)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이후, 헌종·철종·고종 등 4조에 걸쳐 문신으로 봉직하였다. 응와 이원조 불천위 제사는 지금부터 70년 전, 유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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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자건(子乾), 호는 삼주(三洲). 다른 이름으로는 이세원(李世元)을 사용하였다. 할아버지는 조선 말 저명한 유학자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이며, 아버지는 이승희(李承熙), 어머니는 전의 이씨(全義李氏)이다. 이기인(李基仁)은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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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전통 가옥. 이방석 가옥은 성산 이씨(星山李氏) 집성촌인 성주 한개 마을에 조성된 근대식 한옥으로,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17-20[대산리 295번지]에 있다. 성주군 월항면과 선남면을 연결하는 도로변에 있는 성주 한개 마을 안쪽에 자리하며 영취산 산자락에 접하고 있다. 동네 서편에 있는 돈재(遯齋) 이공 신도비(李公神道碑)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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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사도 세자의 호위 무관이었던 이석문을 기리기 위해 1909년에 세운 비. 이석문(李碩文)[1713~1773]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자는 사실(士實), 호는 돈재(遯齋), 별호는 북비공(北扉公)이다. 1713년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 마을에서 태어났다. 한개 마을은 성산 이씨 집성촌으로 아버지는 이이신(李爾紳), 어머니는 야성 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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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성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주학파(寒洲學派)를 계승한 유학자로 개항기 성주 지역의 위정 척사 운동을 주도했고, 대한 제국기 국권 회복을 위한 성주 지역의 구국 운동을 주도하였다. 1908년 5월 연해주로 망명하여 1909년 북만주 밀산부(蜜山府)에서 독립운동 기지 한흥동(韓興洞)을 개척했고, 1913년 남만주 안동현(安東縣)으로 옮겨 공교회(公敎會)[Catholic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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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 영남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문신 중 한 사람이다. 학문과 사환을 병행하여 뚜렷한 성공을 거둔 이상적인 학자 관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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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원조를 기리기 위해 1907년에 세운 비. 이원조(李源祚)[1792~1871]의 본관은 성산(星山), 초명은 영조(永祚)였으나 세자의 이름을 휘하여 고쳤다. 자는 주현(周賢), 호는 호우(毫宇)·응와(凝窩)이며, 시호는 정헌(定憲)이다. 1809년(순조 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을 두루 거쳐 정승의 반열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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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본관은 성산(星山)[성주]. 자(字)는 여뢰(汝雷), 호는 한주(寒洲), 산교(汕嶠), 동교(東嶠), 정와(定窩), 운도재(雲陶齋). 할아버지는 이형진(李亨鎭)[1772~1834], 아버지는 이원호(李源祜)[1790~1859]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 김종옥(金宗沃)이다.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의 장조카이고, 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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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성산 이씨 집성촌으로 많은 고택들로 이루어져 있는 전통 마을. 성주 한개 마을은 뒤로 영취산(靈鷲山)[322m]이 있고 앞으로는 이천(伊川)과 백천(白川)이 합쳐져 이룬 비교적 넓은 농경지와 접한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에 자리한 성산 이씨(星山李氏) 집성촌이다. 농경 사회를 살아온 양반가 집성촌답게 고유한 전통과 풍속이 잘 남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