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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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石文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집필자 | 이해준 |
[정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개설]
금석문의 개념은 포괄적이어서 금속이나 돌에 새긴 문자뿐만 아니라 나무와 그릇, 기와 등 글을 새길 수 있는 곳에 기록된 문자를 뜻한다. 금석문은 긴 세월 보존이 가능하면서 기록자의 신원과 연대가 표기된 경우가 많고, 중앙 중심의 문헌 자료를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나 기록 대상을 미화하는 경우가 많은 한계점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금석문의 대부분은 비석이다.
[고려 시대 금석문]
서산에서도 많은 금석문 자료가 확인된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금석문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의 서산 보원사지에 남아 있는 ‘보원사 법인국사 보승탑비(普願寺法印國師寶乘塔碑)’이다. 화강석의 재질이며 구양수체(歐陽修體) 해서(楷書)의 글씨를 김승렴(金承廉)이 새겨 978년(경종 3)에 건립한 것이다.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900~975]의 일대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비문은 문헌 자료보다 훨씬 구체적이어서 역사적인 가치가 높고 비석의 형태가 뛰어나 1963년 1월 21일 보물 10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시대 금석문]
조선 시대에 제작된 금석문 자료는 주로 유현(儒賢)의 묘비와 신도비가 많고 국가 시설의 기념비와 선정비류가 있다. 묘비 가운데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남정리의 서산 김두징 묘비는 1721년에 세워졌고, 조각 수법이 탁월하여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받았다. 정2품 이상의 뚜렷한 공업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인물에 대해서는 군왕보다도 위대할 수 있는 일이라 하여 신도비(神道碑)를 세워 기리도록 하였는데, 서산에는 김홍욱(金弘郁), 김홍익(金弘翼), 김유경(金有慶), 김운택(金雲澤), 정인경(鄭仁卿), 이택(李澤) 등의 신도비가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의 명종대왕 태실 및 비는 국왕의 태를 모신 성스러운 장소에 세워진 기념비로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서산 해미읍성의 진남루 밖에는 1849년(헌종 15)에 건립한 2기의 비석이 있다. 읍성의 수축에 공이 있는 현감 겸 영장 박민환(朴民煥)의 공적비와 좌영루첩중수비(左營樓堞重修碑)이다.
서산 지역에 부임했던 관리들의 행적을 기리는 선정비도 다수가 확인된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선정비를 시청과 읍면사무소 근처에 모아서 보존하고 있는데, 이중 서산시청 앞 20여 기의 조선 시대 선정비 중 이민휘 군수의 비석은 철로 제작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해미 읍성에서 가까운 여숫골 순교성지에 조성된 비석군은 해미현의 현감과 영장의 선정비류이다.
[일제 강점기 금석문]
일제 강점기에도 많은 기념비가 세워졌다. 그중 1937년에 건립된 성안서원 중건비는 성암서원이 훼철된 이후 다시 중건되기까지의 상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