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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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宗實錄地理志 楊州都護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서동일 |
[정의]
조선 전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중 양주도호부[지금의 경기도 양주시]에 해당하는 부분.
[개설]
『세종실록지리지』는 1424년(세종 6) 편찬에 착수하여 1454년(단종 2) 총 8책 7권[권 149~155] 분량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중 「세종실록지리지 양주도호부」 부분은 제1책 권149에 수록되어 있다. 양주도호부는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시·양주시·의정부시·동두천시·구리시·남양주시·서울 북부 일대를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에 해당된다. 『세종실록지리지』는 현재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규 12524].
[형태]
필사본 1책이며 크기는 세로 34.5㎝, 가로 21.2㎝이다.
[구성/내용]
양주도호부 부분은 지명 연혁·명산(名山)·사방 경계·왕릉·누정(樓亭)·이궁(離宮)·호수(戶數)·인구·군정(軍丁)·성씨·곡식·토공(土貢)·토산물·역(驛)·목장·봉화·사찰·관할 지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지명은 고구려 때 매초현(賣肖縣), 신라 때 내소군(來蘇郡), 고려 때 견주(見州), 조선 때 양주도호부(楊州都護府) 등으로 변화하였다. 명산으로 삼각산(三角山)·천보산(天寶山) 등이 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포천까지 18리[7.2㎞], 서쪽으로 원평까지 22리[8.8㎞], 남쪽으로 광주까지 47리[18.8㎞], 북쪽으로 적성까지 83리[33.2㎞]이다. 왕릉으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능인 건원릉(健元陵)이 있고, 누정으로는 낙천정(樂天亭), 이궁(離宮)은 풍양이궁(豊壤離宮)이 있다. 1754년을 기준으로 호수는 1,481호, 인구는 2,726명, 군정은 시위군(侍衛軍)이 133명, 선군(船軍)이 132명이다. 토착 성씨는 이(李)·김(金)·송(宋)·신(申)·백(白)·윤(尹)·피(皮)씨 등이다. 토지는 1만 5190결(結)이다.
곡식으로 조·메밀·뽕나무, 토공(土貢)으로 느타리·고사리가 있고, 토산물로 송이와 잣이 있다. 역(驛)은 청파(靑坡)·노원(蘆原)·영서(迎曙)·평구(平丘)·구곡(仇谷)·쌍수(雙樹) 등 7개, 목장은 전관평(箭串坪)·녹양평(綠楊坪) 등 2개, 봉화는 대이산(大伊山)·가구산(加仇山) 등 2개이며, 사찰은 회암사(檜巖寺) 등이 있다. 이밖에 관할 지역으로 원평도호부 및 고양·교하·임진·적성·포천·가평 등 6개 현이 있다.
전체적으로 지방 명칭의 변천‚ 행정 단위의 변화 등이 서술되어 있는 연혁 부분과‚ 호구·군정·전결·토산 등 조세 수취에 필요한 경제 관련 사항‚ 명산·대천·군영·역관·성곽·목장·봉수 등 군사 관련 사항‚ 성씨·인물 등 주민들의 신분 구성에 관한 사항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반면 예속(禮俗)이나 자연 환경에 관한 내용은 소략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세종실록지리지』는 조선 왕조 초기의 정치·사회·경제적 기반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통치 자료를 수집·파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책으로, 이 가운데 양주도호부 부분은 수도 한양을 보호하는 기능을 맡고 있던 양주도호부가 조선 초기에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