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544 |
---|---|
한자 | 海東地圖 楊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서동일 |
[정의]
1750년대에 편찬된 『해동지도(海東地圖)』의 경기도 양주목에 해당하는 부분.
[개설]
『해동지도』는 국가 차원에서 제작된 방대한 분량의 채색 필사본 지도로, 조선 전도를 비롯해 도별도, 군현 지도, 세계 지도가 망라되어 있다.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9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태고 4709-41]. 그중 「해동지도 양주(海東地圖楊州)」는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시·양주시·의정부시·동두천시·구리시·남양주시·서울 북부 일대를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을 담고 있다. 지도상에서 양주목은 한성부 동북쪽에 위치해 있고, 왼쪽 아래에 수도 한성[京都]이 표시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해동지도 양주」는 경기도 양주목의 인문·지리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형태]
회화식 지도로 채색 필사본[1장]이다. 크기는 가로 47㎝, 세로 30.5㎝이다.
[구성/내용]
「해동지도 양주」는 지도와 함께 양주목에 대한 개요로 구성되어 있다. 후자는 수도와의 거리·둘레·호수(戶數)·전답 면적·환곡(還穀) 총수·군인 총수·역(驛)·원(院)·인접 행정 구역·봉수(烽燧)·사당(祠堂)·별명(別名) 등의 순서로 기재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양주목의 인구는 8만 7호이고, 전답은 1만 163결(結) 40부(負) 1속(束)이며, 환곡은 전미(田米)가 1,058석, 잡곡이 2만 6929석 등이었다.
한편 군인은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군보(軍保)가 824명이고, 봉수로는 아차산(峨嵯山)과 대이산(大伊山) 봉수대가 있으며, 사당으로는 양진사(楊津祠)가 소개되었다. 양주목의 별명으로는 매성(買省)·창화(昌化)·내소(來蘇)·견주(見州) 등이 기록되었다. 지도는 전체적으로 산·하천·도로를 중심으로 그리되 맥(脈)을 강조했고, 한성과 읍치(邑治) 모두 하나의 형국(形局)으로 표현되었다.
조선 태조의 능인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해 광릉(光陵)·현릉(顯陵) 등 많은 능묘(陵墓)가 보인다. 도로의 경우, 한성에서 경기 북부로 이어지는 길[포천통로(抱川通路)·마전통로(麻田通路)·파주통로(坡州通路)·적성통로(積城通路)]과 강원도로 이어지는 길[관동로(關東路)], 한강의 나루로 이어지는 길이 모두 양주를 지나가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경기도 양주목의 읍치·주요 시설·도로망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