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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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洲官衙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141-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동규 |
건립 시기/일시 | 1506년 - 치소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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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922년 - 의정부로 이전하면서 폐지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0년 1월 20일~2000년 4월 15일 -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제1차 발굴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0년 8월 7일~2000년 9월 9일 -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추가 시굴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1년 3월 5일~2001년 7월 24일 -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제2차 발굴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5년 10월 18일~2006년 5월 27일 -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제3차 발굴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9월 6일~2006년 10월 23일 -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추가 발굴 조사 실시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9년 4월 23일 - 양주관아지 경기도 기념물 제16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양주관아지 경기도 기념물 재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6년 - 원골문화마을 조성 계획 |
소재지 | 양주관아지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141-1 |
출토 유물 소장처 | 경기문화재연구원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1116-1 |
성격 | 관아 터 |
지정 면적 | 32,247㎡ |
소유자 | 양주시 |
관리자 | 양주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아 터.
[개설]
관아는 지방 수령의 집무처인 동헌(東軒)과 수령의 관사인 내아(內衙), 그 지방 출신으로 수령을 보좌하던 사람들의 집무처인 향청(鄕廳), 그리고 수령을 보좌하는 육방 관속 아전들의 근무처인 작청(作廳) 등으로 조직되어 있는 행정 시설이었으며, 기타 많은 관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변천]
양주 관아(楊洲官衙)는 조선 시대 양주목(楊州牧)의 치소(治所)로서, 1504년(연산군 10) 양주목이 일시적으로 폐지되었다가 다시 복구되던 해인 1506년(중종 1) 현재의 위치에 설치되었고, 1922년 의정부로 이전할 때까지 417년간 양주목을 다스리는 관청이 있었던 곳이다.
양주 관아의 규모가 어떠하였는지는 『여지도서(輿地圖書)』[1760], 『경기지(京畿誌)』[1842], 『경기읍지(京畿邑誌)』[1871] 등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이 중 양주목의 규모를 가장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경기읍지』이다. 『경기읍지』에 따르면 약 31개의 관아 관련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객사와 관련된 시설은 1개, 동헌과 관련된 시설은 내아를 포함하여 14개, 관아 부속 시설은 향청을 비롯해서 7개, 중영과 관련된 시설은 9개로 구분할 수 있다.
[위치]
양주시청에서 지방도 98호선을 따라 양주시 광적면 방면으로 약 1.5㎞ 가면 양주향교(楊州鄕校)[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2호]와 양주별산대놀이전수회관이 보이는데, 그 서쪽에 복원된 동헌이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가 양주관아지(楊洲官衙址)이며, 정확한 소재지는 양주시 유양동 141-1번지 일원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6년 수립된 원골문화마을 조성 계획에 따라 금화정(金華亭) 및 동헌을 복원하고, 관아 부속 건물의 하나인 길청[관아에서 구실아치가 일을 보던 곳]을 복원하던 중 1999년 4월 23일 양주관아지 일대가 경기도 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됨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의 복원 관련 제반 사업은 반드시 발굴 조사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길청 복원 사업을 중지하고 발굴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발굴 조사는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하였다.
제1차 발굴 조사는 현재 양주목사 송덕비군(楊州牧使頌德碑郡)과 관리 사무소가 있는 지역에 대한 발굴 조사와 오른편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양주시 유양동 136번지 일원에 대한 시굴 조사로 진행되었는데, 조사 목적은 길청 추정지와 기타 부속 건물 터의 확인이었다. 총 조사 면적은 5,224㎡이었고, 2000년 1월 20일부터 그해 4월 15일까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발굴 조사 지역에서 양주 관아의 동쪽 담장이 확인되었고, 시굴 조사 지역에서는 민가로 추정되는 건물 터 1기가 확인되었지만 길청으로 추정할 수 있는 건물 터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어 길청 터 및 관아 관련 건물 터 등의 유구 존재 여부 확인을 위해 2000년 8월 7일부터 그해 9월 9일까지 진행된 동헌 부지에 대한 추가 시굴 조사에서 동헌과 관련된 건물 터 및 담장 터, 기타 유구가 확인되어 전면 발굴 조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01년 3월 5일부터 그해 7월 24일까지 제2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건물 터 11개 동, 담장 터 5개소, 축대 3개소, 출입 시설 등 5개소, 배수로 3개소 등이 확인되었으며, 건물 터는 크게 세 번의 증축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현 동헌 건물 바로 앞쪽으로 정면 5~7칸, 측면 3칸 정도 규모의 원래의 동헌 터로 추정되는 곳이 확인되었고, 길청 터는 확인되지 않았다.
제3차 발굴 조사는 관아의 영역 및 배치 형태를 파악하여 복원의 근거 자료로 활용하고자 조사 면적 8,464㎡에 대해 2005년 4월 22일부터 그해 7월 8일까지 시굴 조사를, 2005년 10월 18일부터 2006년 5월 27일까지 발굴 조사를, 2006년 9월 6일부터 그해 10월 23일까지 추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건물 터 12개 동, 외곽 축대 5기, 담장 터 9기, 배수로 3기 등이 확인되었다.
주요 발굴 성과로는 첫째, 조사에서 확인된 외곽 축대와 담장을 통해 동헌과 내아, 그리고 일부 부속 시설을 아우르는 범위가 확인된 것, 둘째, 현 동헌과 내아 터를 경계 짓는 담장 터 및 현 동헌 북쪽에 위치하는 담장 터가 확인된 것, 셋째,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82호인 어사대 비(御射臺碑)의 원래 위치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된 것을 들 수 있다.
내아 터로 추정되는 현 동헌 서편은 1/3가량이 기존 민가 신축으로 인해 이미 훼손된 상태였고, 훼손되지 않은 부분에서 건물 관련 담장, 기초석, 기단 석렬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로는 평기와를 비롯하여 막새기와·명문 기와 등의 기와류 및 청자·분청사기·백자 등의 자기류, 상평통보(常平通寶) 등의 금속 유물이 있다.
[현황]
양주관아지는 1999년 4월 23일 경기도 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양주시이다. 출토 유물은 경기문화재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1996년 문화체육부로부터 양주관아지 일대가 시범 문화 마을로 지정됨에 따라 원골문화마을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1997년 복원된 동헌 1동과 역대 양주목사의 송덕비 20여 기가 세워져 있다. 또한 양주관아지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2000~2006년까지 발굴 조사가 진행된 이후 향후 관아 복원을 위한 추가 개발은 진행되지 않고 현상이 보존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 동헌 건물 뒤로는 제3차 발굴 조사 당시 확인된 담장열이 가로로 지나가고 있고, 그 뒤로는 어사대 비가 자리한다. 양주관아지 전면에는 여러 채의 민가와 음식점이 있으며, 주변으로는 양주별산대놀이전수회관, 양주향교, 유양초등학교 등이 위치해 있다.
[의의와 평가]
양주관아지는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417년간 양주목을 다스리던 관청이 있던 곳으로, 과거 현재의 양주시 유양동 일대가 가졌던 기능적인 역할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진행된 발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연구가 진행된다면 조선 시대 관아의 건물 배치 및 구조, 형태, 기능 등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