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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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秉健 |
영어음역 | Jeon Byeonggeon |
이칭/별칭 | 전혁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177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은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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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177 |
성별 | 남 |
생년 | 1899년 11월 12일 |
몰년 | 1950년 10월 13일 |
본관 | 정선(旌善) |
대표경력 | 양산군 인민위원장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전혁이라는 별칭이 있다.
[활동사항]
전병건은 엄주태 등과 함께 1919년 3월 27일 양산장날을 기해 일으킨 3·27양산의거를 주도하여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1년부터 양산청년회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제6회 총회 때 집행위원으로 피선되면서 양산청년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27년 결성된 양산청년동맹의 제2회 총회에서 집행위원장에 피선되었고, 청년동맹 결성 문제로 구금되기도 하였다.
또한 신간회 양산지회의 창립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고, 양산농민조합에 참여하여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1932년 양산경찰서에 구속된 양산농민조합 간부의 석방을 요구하며 조합원 300여 명과 경찰서를 습격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해방 직후 양산군 인민위원장을 지내다가 미군정 때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그러나 1950년 6·25가 일어난 이후 양산경찰서로 연행되어 처형당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