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3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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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化龍- |
영어의미역 | Hwaryong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동 화룡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원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옛날에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기 때문에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고장이었으나 지금은 양산의 도시화로 인해 공단 지구로 변모하여 조용하고 한가롭던 옛 모습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명칭유래]
마을 앞 선암산에서 반룡대를 향해 뻗은 산맥이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소(沼)에서 선암산을 향하여 용이 승천하는 모양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화룡마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초기로 보이며, 동넷골에서 살다가 차츰 현재의 마을 위치로 내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입촌 성씨는 충주지씨(忠州池氏), 김해김씨(金海金氏), 영일정씨(迎日鄭氏) 순이었다. 본래 양산군 상서면 지역이었으나 1807년(순조 7)에 서면이 상서면으로 개칭되었으며, 화룡리와 어곡리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곡동과 화룡동이 통합되어 상서면 어곡리가 되었으며, 1936년에는 어곡동은 대리(조항) 동리 하(下)화룡, 상(上)화룡의 자연마을을 포함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마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초기로 보이며 동넷골에서 살다가 차츰 현재 마을 위치로 내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입촌 성씨는 충주지씨(忠州池氏), 김해김씨(金海金氏, 영일 정씨(迎日鄭氏) 순이다. 이 지역 밭두렁 곳곳에는 지금도 빗살무늬의 흑생 기와 조각이 산재해 있다. 조국여씨(도예가)가 1997년 7월 현지조사한 바에 의하면 고려,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 및 토기편이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특히 기와 조각에는 수많은 문자와 연월일이 각인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비록 연결은 불가능하였지만 梁字와 山또는 州로 보이는 문자는 뚜렷했다고 한다. 1939년에는 상서면이 물금면으로 개칭되어 물금면 어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쪽으로는 가마등[釜嶝]이 상북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마을과 접해 있고, 동북쪽으로는 거무곡(巨武谷)이 귓들 층층계단의 농경지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을 향하여 어곡천이 마을 앞을 흘러 양산천에 합류한다.
[현황]
어곡동의 중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6년 현재 총 74세대에 156명(남자 84명, 여자 7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뒷들 위로는 광개밭골이 있고, 북쪽으로는 사태골과 그 아래에 모래들이 펼쳐져 있다. 모래들 위 하천가의 점떡걸은 조선시대에 농기구 및 생활 용품을 만들었던 터였다. 반룡대(盤龍臺)가 있고 그 아래 서쪽으로는 전북들이 숙호등(宿虎嶝)으로 이어져 있다.
구전에 의하면 동편에 샘 터 두 곳이 있었고, 북쪽 산과 인접한 곳에는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토굴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졌는데, 임진왜란 당시 피난처였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에덴밸리컨트리클럽으로 가는 길목이 있어 스키용품 판매점과 좌우로는 기업체가 들어서 있다.
주요 지명으로는 가마등·거무곡·광개밭골·능걸·능뻔더기·대문걸 등이 있다. 주요 기관 및 시설로는 경남외국어고등학교, 마을회관, 신불산 공원묘원, 천주교 영지 등이 있다. 양산천을 따라 지방도 1022호선이 북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어곡천의 하류인 유산교에서 지방도 1077호선이 어곡천을 따라 북서쪽으로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