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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373
한자 三國時代
영어음역 Samguk Sidae
영어의미역 Three Kingdom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충배

[정의]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정립하던 시대의 용인 지역의 역사.

[개설]

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쇠퇴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마한 군장사회들 중 하나였던 백제가 백제국가로 흥기하게 됨에 따라 그 중심지로부터 불과 30여㎞ 떨어져 있던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 세력권 안으로 흡수·통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용인 지방은 『대동지지(大東地志)』,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 멸오(滅烏)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그러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3만 병력을 동원해 백제의 왕도 한성(漢城)을 강습하여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 한강 유역 일대는 물론 조령·죽령에서 남양만까지 영토를 확대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가 경기도 이천 지역에는 남천현, 용인 지역에는 구성현(驅城縣)을 설치하였으며 구성현을 멸오라고도 불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구려가 설치했다는 구성현은 군현제 하의 현이라는 행정 단위가 아니라 용인 지역에 고구려의 군사적 거점을 설치했다고 볼 수 있다.

550년 백제의 고구려 도살성 공격 및 고구려의 백제 금현성 공격으로 두 나라의 군세가 소진한 틈을 타 이 두 성을 차지했다. 그리고 551년 신라는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고 고구려 세력을 몰아내고 한강 유역은 다시 백제가 차지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돌궐과의 군사적 긴장 고조로 나제동맹군(羅濟同盟軍)의 움직임에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하였다.

552년 신라는 한성(漢城)을 장악한 후 553년 백제의 동북 변경 지역을 강점하고 신주(新州)를 설치하였다. 결국 554년 신라와 백제 사이의 관산성 전투로 나제동맹은 와해되고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신라는 경기도 광주(廣州) 일대에 신주를 설치하고 아찬(阿湌) 김무력(金武力)을 군주로 삼아 새로운 점령지의 군정권(軍政權)을 통할하게 하였다. 용인 지역 역시 이러한 신주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유적]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는 삼국시대 유적 중 백제와 관련된 유적들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백제주거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유적,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 유적,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유적,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유적 등의 주거 유적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유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마북동 백제토광묘 등의 고분 유적이 있다. 이외에도 경기도 용인 지역 전반적으로 주거 유적 혹은 고분 유적으로 밝혀질 수 있는 다수의 백제 토기 유물산포지들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

고구려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최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고구려 고분군이 조사되었다. 이 고분들은 횡혈식 석실분으로 천장을 말각하여 모를 죽여나간 전형적인 고구려 묘제의 전통을 잇고 있었으며 특히 고분 내부에서는 고구려 토기가 확실한 외반구연호 등과 관못, 관장식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라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주로 고분 유적이 알려져 있는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용인 보정동 고분군을 들 수 있다. 이 유적에서는 부가구연을 갖춘 장경호와 유개고배류가 출토되었으며 유물과 고분의 구조로 볼 때 신라가 한강 유역에 진출하던 6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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