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4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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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處仁部曲 |
영어음역 | Cheoin-bugo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성환 |
[정의]
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처인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1018년(현종 9)에 이미 그 이름이 기록에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 이래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을 것이다.
[관련기록]
『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기 중엽)·『여지도서(輿地圖書)』·『대동지지(大東地志)』·『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71)·『용인군지(龍仁郡誌)』(1899) 등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
부곡제의 일반적인 내용에 따라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主縣)의 임내(任內)에 속해 있었지만, 독자성을 인정해 군현의 하부 촌락으로 편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토착 세력인 향리가 있어 부곡사(部曲司)에 모여 행정 사무를 처리했고, 공해전시(公廨田柴)도 속하고 있었을 것이다. 부곡민들은 국가 공유지를 경작하는 역을 부담했다.
『고려사』에 의하면, 선종 때 직한림원에 발탁된 정문(鄭文)이 외조부가 처인부곡 출신이어서 간관과 같은 청요직에 임명할 수 없다는 대간의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부곡제 출신들이 일반 군현 출신보다 관직 진출에 신분적 제한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변천]
1232년(고종 19) 처인부곡민을 이끈 김윤후(金允侯)가 몽고 적장 살리타를 사살한 공을 인정받아 처인현으로 승격했다. 조선시대에는 1397년(태조 6) 현령을 파견하여 경기좌도에 속하게 했고, 처인현령은 수원에 속해 있던 쌍부현(雙阜縣)의 겸관(兼官)이 되기도 했다. 1413년(태종 13) 용구현과 합쳐져 용인현에 통합되었다. 지금의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일대로, 처인성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