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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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遠三面示威運動 |
영어음역 | Wonsam-myeon Siwi Undong |
영어의미역 | Independence Movement in Wonsam-my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박수현 |
[정의]
191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역사적 배경]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원삼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발단]
2·8독립선언식에 참여하였던 오의선(吳義善)과 교원 양성소에 다니던 이봉현(李鳳鉉) 등이 고향으로 내려와 황경준(黃敬俊), 최상근(崔相根), 이은표(李殷杓), 김은수(金殷秀) 등과 협의하여 원삼면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경과]
3월 21일 면사무소 앞에서 좌항리, 사암리, 맹리 등의 주민들이 연합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전개되었으며, 밤에는 구봉산, 수정산 등지에서 봉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대는 인근 지역으로 시위를 확산시키기 위해 밤늦게 외사면으로 이동하던 중 출동한 일본헌병대의 공격을 받고 해산당했다. 3월 31일과 4월 2일에도 사암리 등지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결과]
원삼면 시위운동은 용인 각 지역에서 시위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성낙성 등 3명이 일본헌병의 총격으로 피살당했으며, 황경준, 김은수, 이은표 등 주동자 12명이 징역형을 받았고, 참여자 21명이 태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