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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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迎日鄭氏 |
영어음역 | Youngil Jeongssi |
영어의미역 | Youngil Jeong Clan |
이칭/별칭 | 연일정씨(延日鄭氏),오천정씨(烏川鄭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왕산리|갈담리 |
집필자 | 정양화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왕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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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왕산리 |
입향시기/연도 | 15세기[능원리]|17세기[왕산리] |
성씨시조 | 정습명(鄭襲明) |
입향시조 | 정보(鄭保)|정지한(鄭之翰) |
[정의]
정습명을 시조로 하고 정보와 정지한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시조는 신라 때 간관(諫官)을 지낸 정종은(鄭宗殷)이며 그 후손인 정습명(鄭襲明)을 중시조로 하는 지주사공파와 정극유(鄭克儒)를 중시조로 하는 감무공파가 있다. 이 양파는 시조를 같이하면서도 그 중간 계보를 잃어버려 서로 촌수를 헤아리지 못한다.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가 가장 유명하며 양명학의 시조인 정제두와 구한말 농상공부대신을 지낸 정낙용이 그 후손이다. 감무공파로는 송강 정철(鄭澈)이 있다.
[입향경위]
용인이 세거지가 된 것은 조선왕조에 들어와 복권된 정몽주의 묘가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능원리 일대를 사패지로 하사받고 수백 년 동안 자손들이 그 곳에 정착, 번성하였다. 이후 손자인 정보(鄭保)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면서 세가 크게 위축되었다가 숙종 때 단종이 복권되고 사육신이 포상받게 되면서 영일정씨도 다시 번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몽주의 7세손에 이르러 별좌공파·판서공파·포천공파로 분파되었고 포천공 정종선(鄭從善)의 손자인 정지한(鄭之翰)이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 왕곡마을 속칭 왕구리로 이거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이후 갈담리와 일산리 등으로 퍼졌다.
[현황]
현재에도 경기도 용인지 처인구 모현읍 일대에서는 대성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관련유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포은 정몽주 묘역과 재실인 영모재가 있으며 신도비가 묘역 앞에 있다. 충렬서원과 정몽주 종가가 있으며 사당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