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0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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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內地部 |
영어의미역 | Comintern's Korburo Branch |
이칭/별칭 | 꼬르뷰로 국내부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강윤정 |
성격 | 사회주의운동단체|독립운동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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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연도/일시 | 1923년 5월 |
해체연도/일시 | 1924년 3월 |
설립자 | 김재봉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안동 지역 출신의 인물들이 참여한 공산당 설립을 위한 준비 기관.
[개설]
1922년 12월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의 지도로 고려공산당 중앙총국, 즉 꼬르뷰로(고려부)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되었다. 꼬르뷰로를 만든 국제공산당은 바로 이어 국내에 꼬르뷰로 내지부를 만들어 조선공산당 건설을 위한 기초 작업에 들어갔다. 그 임무를 띠고 국내로 파견된 인물이 바로 경상북도 안동 지역 출신의 김재봉(金在鳳)이었다.
[설립목적]
꼬르뷰로 내지부는 국내 각 사회주의 그룹을 통합하여 공산당 정당을 만들기 위한 준비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코민테른의 지령을 받고 국내에 들어온 김재봉은 1923년 5월 무렵 꼬르뷰로 내지부를 설치하였다. 내지부의 초기 구성은 명확하지 않으나 중심에는 김재봉이 있었다. 꼬르뷰로 내지부는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하면서 조직을 확대하고자 기존의 무산자동맹회와 조선노동연맹회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신사상연구회란 사상단체를 조직하였다.
김재봉은 1923년 8월에 꼬르뷰로 내지부를 이끌면서 당 건설 기반을 다지는 작업에 나섰다. 이를 위해 전국 노동단체와 소작단체를 합하여 전선노동총동맹발기회(全鮮勞動總同盟發起會)를 결성하는 한편, 청년단체도 정리하여 전선청년총동맹(全鮮靑年總同盟)을 조직하기로 했다. 청년단체는 1924년 2월에 무산청년회와 토요회가 결합하여, 신흥청년동맹으로 발전하였다.
이어 김재봉은 각 공산주의 그룹의 통합에 의한 당 건설에 나섰다. 1924년 3월경 꼬르뷰로 내지부·북성회파·상해파·서울파(고려공산동맹) 등 각파 공산주의 그룹의 대표자들이 통일된 당을 조직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각 그룹의 대표 13명이 모였다 하여 ‘13인회’라고 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과 조선청년총동맹의 결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각 그룹 사이에는 공산당을 창립함에 있어서 함께 할 대상의 범위와 방법론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꼬르뷰로 내지부측은 1924년 9월 ‘13인회’에서 탈퇴를 선언하였다.
김재봉은 공산당을 건설함에 있어서 더는 서울파와의 통합 방침을 고수하지 않았다. 이는 꼬르뷰로 내지부의 독자적인 당 건설 추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꼬르뷰로 내지부는 1924년 11월 18일 신사상연구회를 화요회로 개칭하고, 불철저한 강령의 발표보다는 실천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대중에게 선전한다는 태도를 밝히고, 독자적인 당 건설에 나섰다. 화요회는 각지의 사회주의자들을 사상적, 조직적으로 통일해 나가면서 당 건설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화화사(火花社)를 설립하고 기관지로 『화화(火花)』를 발행하기로 했다. 김재봉은 물론 안동 지역의 이준태·안상길·권오설 등이 화화사의 발기인 및 『화화』의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꼬르뷰로 내지부가 화요회를 표면에 내세우고 독자적으로 공산당을 조직하는 방침을 결정한 즈음에 안동 지역 출신의 사회주의자들은 고향 안동에 꼬르뷰로 내지부 세포기관의 표현단체를 조직하였다. 즉, 1925년 1월 8일 권오설·이준태·김남수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사상단체 화성회(火星會)를 조직하였다. 이는 안동 지역의 사상단체인 화성회와 농민단체인 풍산소작인회가 꼬르뷰로 내지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재봉 등의 꼬르뷰로 내지부, 즉 화요파가 중심이 되어 조선공산당 창립대회를 준비하면서 지방의 사회주의자들을 도 단위로 결합시켜 나갔다. 경상북도 지역은 1925년 3월 21일에 안동 지역에서는 화요파와 그에게 우호적인 사회주의자들이 모여 사합동맹(四合同盟)을 결성하였다. 안동읍에서는 김남수·김응한(金膺漢)·김원진(金元鎭), 예안 지역에서는 이규호(李奎鎬), 도산 지역에서는 이운호(李雲鎬), 와룡 지역에서는 안상길, 길안 지역에서는 류연건(柳淵建), 풍산 지역에서는 김지현(金芝鉉) 등이 사합동맹의 주요 간부로 선정되었다. 김재봉이 이끄는 꼬르뷰로 내지부는 1925년 4월 17일 조선공산당을 조직하는 데 성공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내 각 사회주의 그룹을 통합하여 공산당 정당을 만들기 위한 준비 기관으로 설립된 꼬르뷰로 내지부는 국내 공산주의자들의 통합을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하였으나 꼬르뷰로 내지부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화요회를 중심으로 1925년 4월 17일 조선공산이 결성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