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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58
한자 金啓光
영어음역 Gim Gyegwang
이칭/별칭 경겸(景謙),구재(鳩齋),구로양로(鳩老兩老)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원당마을지도보기
성별
생년 1621년(광해군 13)연표보기
몰년 1675년(숙종 1)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풍기군수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겸(景謙), 호는 구재(鳩齋). 증조부는 김극(金克), 할아버지는 좌찬성 김희맹(金希孟), 아버지는 김진(金震),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도헌(陶軒) 류우잠(柳友潛)의 딸이다. 아내는 두 명으로, 16세에 완산이씨(完山李氏)와 결혼하였다가, 이씨 사후인 44세에 다시 안동권씨(安東權氏)를 맞아들였다.

[활동사항]

김계광은 안동부 예안현 원당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원당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모친을 잃고 외가에서 자랐다. 처음 외조부 류우잠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뒤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의 문하에서 차례로 수학하였다. 1654년(효종 5) 생원과 진사 양시에 합격하였고, 40세 되던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성균관학유를 시작으로 봉상시직장, 가주서, 성균관직강겸춘추관편수관을 차례로 거쳤으며 1664년 보안도찰방(保安道察訪), 1669년 풍기군수에 제수되었다. 1673년 풍기군수에서 물러나 안동 집에서 거주하다가 이듬해 8월 현종이 승하하자 병든 몸을 이끌고 몸소 인산에 참가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병이 심해져 한양에서 5개월 정도 머물다가 안동에 내려온 후 다음해 정월 초사흘 예안 원당의 본가에서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계광은 청빈과 학덕으로 당시 사림의 신망을 받아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와 더불어 ‘구로양로(鳩老兩老)’로 병칭되었다. 사후에 태학(太學)의 학생들은 영남 사람들을 만나면 눈물을 흘리며, “구재목재 두 선생의 죽음이 한 시에 일어나니, 심히 우리 사림의 횡액(橫厄)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구재집(鳩齋集)』 4권 2책이 있다.

[묘소]

묘소는 선성현(宣城縣,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북쪽에 있는 요성산(邀聖山)의 성천사(聖泉寺) 뒤쪽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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