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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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允安 |
영어음역 | Gim Yunan |
이칭/별칭 | 이정(而靜),동리(東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민석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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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
성별 | 남 |
생년 | 1560년(명종 15) |
몰년 | 1622년(광해군 14) |
본관 | 순천 |
대표관직 | 대구부사 |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이정(而靜), 호는 동리(東籬). 할아버지는 효행으로 천거되어 사헌부감찰을 지낸 김자순(金自順), 아버지는 건공장군(建功將軍)에 추증된 김박(金博),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셋째 형인 이의(李漪)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윤안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서 태어났다. 11살 무렵에 소고(嘯臯) 박승임(朴承任)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이후에는 류운룡(柳雲龍)과 류성룡(柳成龍)에게 배웠다. 1588년(선조 21) 생원과 진사 양시에 동시에 합격하여 스승인 류성룡의 뒤를 이을 재목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金垓)를 대장으로 한 안동의진(安東義陣)에 가담하였다.
1605년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을 제수받아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역로(驛路)와 해이해진 역졸들의 기강을 회복시키는 데 전력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내섬시직장을 제수받았다가 곧 가례낭청(嘉禮郎廳)으로 개배되었다. 다음해 53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으로부터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을 제수받고 품계가 당상관인 정3품 통정대부로 승진하였다. 1613년에 대구부사(大丘府使)를 제수받아 탐학한 관기를 바로 잡고 백성을 교화하는 데 힘썼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동리집(東籬集)』이 있다. 문집의 권1~2는 시(詩)로 구성되어 있고, 권3에는 소(疏) 3편, 4권에는 서(書), 기(記), 제문(祭文), 잡저(雜著)가 실려 있다. 권5는 부록으로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제문(祭文), 만시(輓詩) 화천추향봉안문(花川追享奉安文)이 실려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광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류운룡을 주향으로 하는 화천서원(花川書院,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소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