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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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萬秀 |
영어음역 | Gim Mansu |
이칭/별칭 | 회일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강윤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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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
성별 | 남 |
생년 | 1894년 |
몰년 | 1924년 |
본관 | 풍산 |
대표경력 | 서로군정서 참모부원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 풍산(豐山), 자는 회일(會一)이다. 1894년(고종 31)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풍산김씨 동성마을인 오미리에서 출생하였다.
[활동사항]
김만수는 1913년 만주로 망명하여 길남장(吉南庄)의 군사가 되었다. 길남장은 1918년 봄 안동 출신으로 만주 지역 최고 지도자인 이상룡(李相龍)이 화전현에 설치한 병영이다. 그 후 김만수는 1919년 4월에 조직된 서로군정서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김만수가 서로군정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는 1922년이다. 이 무렵 서로군정서는 헌병대를 새로 조직하였는데 여기에 김만수가 가담하였다.
1924년 4월 참의부 소속으로 활동하던 김만수는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 고등정탐부장 큐니요시[國吉精保]와 형사부장 마쓰시마[松島]를 처단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갔다. 이들이 장춘과 하얼빈에서 한국인들에게 많은 해악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만수는 동지 10여 명을 모아 건국청년모험단을 결성하고, 최병호(崔炳浩)·류기동(柳基東)과 함께 하얼빈에 도착하였다.
이들 세 사람은 1924년 12월 2일 하얼빈의 합부 남십팔도가에 위치한 중국인 집에 방 한 칸을 얻었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데 이 기밀이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 경찰에 들어가, 일제 경찰은 중국 군대와 교섭하여 200여 명의 군대를 끌고 기습에 나섰다. 김만수는 끝까지 항거하며 총격전을 벌인 끝에 일본 경찰 10여 명을 살해하고, 최병호·류기동과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들의 유해는 현지 동포들의 손으로 조선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