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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562
한자 金福漢
영어음역 Gim Bokhan
이칭/별칭 김영일,우보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서부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부동 지도보기
성별
생년 1920년연표보기
몰년 1979년연표보기
본관 김해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우보(遇步), 또 다른 이름은 김영일(金瑛一)이다. 1920년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부동에서 출생하였고, 1979년 사망하였다. 풍산읍 노리의 안동공원묘지에 김복한의 묘가 있다.

[활동사항]

김복한은 일본에서 유학하여 1943년 3월 일본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하여 군사 교육과 근로 봉사를 강요당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침략 전쟁에 동원될 목적으로 학도병에 강제 징집되던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안동농림학교 학생인 권영동(權寧東)·고제하(高濟夏) 등은 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고 있어 일제의 패전이 확실하므로, 학도병으로 끌려가 죽기보다는 차라리 민족을 위해 싸우다 죽자고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1944년 10월 말 이들은 조선회복연구단(朝鮮恢復硏究團)을 조직하였다. 한편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던 이정선(李貞善)은 1943년 귀국하여 안동농림학교 9회생 동기들을 규합하였다. 이들은 같은 해 4월 면학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명성회(明星會)를 조직하고, 『여명(黎明)』이라는 교양 잡지를 발간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과 명성회는 보다 효과적인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1944년 10월 연합하였다. 이 두 단체는 ‘안동경찰서를 기습 공격하고 무기고에서 무기를 확보하여 항쟁을 벌인다.’는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일제에게 조직이 드러나는 바람에 1945년 단원 64명이 체포되었다. 김복한도 이 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1945년 8월 17일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9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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