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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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東鳳 |
영어음역 | Yi Dongbong |
이칭/별칭 | 가견(可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류현정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동봉(李東鳳)은 본관이 진성(眞城)이고, 자는 가견(可見)이다. 1894년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애산사숙(愛山私塾)과 도산면 서부리에 있는 선성의숙(宣城義塾)에서 공부하였다.
[활동사항]
이동봉은 이용호(李用鎬), 김동택(金東澤), 신응한(申應漢) 등과 함께 1919년 3월 1일 고종의 인산에 참가했다가 시위 모습을 보고 돌아와 예안면 시위를 계획, 준비하였다. 예안면 시위는 1919년 3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 이동봉을 중심으로 한 군중들이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에 올라가 일본이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를 쓰러뜨리고 독립 만세 부르는 것을 신호로 시작되었다.
일본 경찰과 수비대가 진압하는 데도 이동봉은 군중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계속하다가 주동자로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2년형을 선고 받고 항소하였으나 기각되고, 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병세가 심하여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1920년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