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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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汎燮 |
영어음역 | Im Beomseop |
이칭/별칭 | 임범섭(林範燮),우석(禹昔),남당(南堂)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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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
성별 | 남 |
생년 | 1898년 |
몰년 | 1969년 |
본관 | 예천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임범섭(林汎燮)은 본관이 예천(醴泉)으로, 이명은 임범섭(林範燮)이고, 자는 우석(禹昔)이며, 호는 남당(南堂)이다. 1898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으며, 후에 영양군으로 이주하였다. 1969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임범섭은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임찬일·임득연과 함께 고종의 국장에 참가하여 「독립선언서」를 구해 오면서 임하면 시위를 준비하였다. 임범섭을 비롯한 노말수·류북실·임춘섭 등은 처음에 3월 16일 길안장날을 거사일로 결의했지만, 당일 호응하는 사람이 적어 3월 21일로 연기하였다.
3월 21일 저녁 금소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 앞에서 시위를 시작하여 임하면소재지인 신덕리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이날 시위에서 노말수·조복선 등과 함께 앞장서서 경찰 주재소와 임하면사무소의 기물과 건물을 부수었다. 이 일의 주동자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임범섭은 1919년 9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