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17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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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得淵 |
영어음역 | Im Deukyeon |
이칭/별칭 | 임동휴(林東烋),임덕수(林德銖),임덕련(林德鍊),여일(汝一),경포(鵛浦)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77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현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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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77 |
성별 | 남 |
생년 | 1896년 |
몰년 | 1953년 |
본관 | 울진 |
[정의]
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울진(蔚珍). 이명은 임동휴(林東烋)·임덕수(林德銖)·임덕련(林德鍊)이며, 자는 여일(汝一), 호는 경포(鵛浦)이다. 1896년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서 태어났다. 1914년 임하면 금소리에 설립된 금양의숙(錦陽義塾)에서 수학했다.
[활동사항]
1919년 안동의 3·1만세시위는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안동·예안·임동·임하·길안 등 11개 지역에서 14회에서 걸쳐 일어났다. 임득연은 1919년 3월 임찬일, 임범섭과 함께 고종의 국장에 참가하고 독립선언서를 구해 오면서 임하면의 만세시위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3월 21일 임득연을 비롯한 금소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임하면 소재지인 신덕까지 몰려갔다. 임득연은 시위 군중과 함께 주재소와 임하면사무소로 몰려가 서류를 파기하고 기물과 건물을 부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의 주동자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임득연은 1919년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