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402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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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A Love Story from 450 Years Ago in Andong to Move the World to Tear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안동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규복 |
[개설]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는 안동시 정상동 일대의 택지 개발과 관련한 발굴 도중, 조선시대 미라와 함께 당시의 복식이 묻혀 있는 무덤을 발굴하였다. 미라의 주인공은 고성이씨(固城李氏) 이응태(李應台, 1556~1586)로 장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무덤에서 나온 애절한 필치로 쓴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와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 여러 나라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발굴 과정]
1998년 4월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는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택지 개발 계획에 따라 고성이씨 집안의 이름 모를 무덤을 발굴하였다. 무덤에서는 단단한 회곽(灰槨)안에서 나뭇결이 생생히 살아 있는 외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덤의 주인은 키 180㎝ 정도의 건장한 남자로 장례 당시의 염습(殮襲)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450년 전의 타임캡슐]
1. 당시의 생활상을 알려 주는 출토 유물
이응태의 외로움을 달래 주려는 듯 무덤 안에는 여러 유물들이 함께 묻혀 있었다. 부인이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한글 편지, 아우의 죽음을 애도하며 적어 내린 추도시, 아버지와 평소에 주고받았던 각종 서신들……. 이것을 통해 망자가 고성이씨 집안의 이응태라는 인물이며 31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음을 알 수 있었다.
복식류는 70여 점이 출토되었다. 이들은 주로 이응태가 평소에 입던 것인데 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와 아들의 것으로 짐작되는 적삼도 있었다. 이러한 복식들의 종류와 형태, 구성적 특징, 바느질 방법은 16세기 후반의 의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응태 묘는 장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상례 및 장례와 관련된 풍속사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된다.
2. 각종 서신들을 통해 부활한 이응태
발굴 당시에는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었고, 고성이씨 집안의 족보에도 이응태와 관련해서는 생몰 연대와 무덤의 위치가 미상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덤에서 나온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와 형이 쓴 만시(輓詩), 평소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각종 편지들을 통해 무덤의 주인공이 이응태이고, 31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는 13통인데, 모두 여러 겹으로 접힌 채 하나의 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다. 이 편지를 확인하여 보니 대부분이 “아들 응태에게 보낸다(寄子應台, 子應台寄書)”는 내용이 있어 무덤의 주인공이 이응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응태가 죽은 해는 부인이 쓴 한글 편지의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라는 내용에서 당시 병술년이 1586년임을 알 수 있었다.
태어난 해는 형이 쓴 만시 가운데 “아우와 함께 어버이를 모신 지가 지금까지 31년인데(共汝奉旨甘 于今三十一)”라는 내용을 통해 이응태가 31살의 나이에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31살의 나이를 역산한 결과 1556년에 태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가슴 저미도록 애틋한 부부간의 사랑이야기]
1. 이 신 신어 보지도 못하고
이응태의 묘에서 발굴된 유품 중 남편의 머리맡에서 나온 미투리는 이들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짐작하게 했다. 미투리를 싸고 있던 한지가 훼손되어 내용을 모두 알 수는 없었으나, “이 신 신어 보지도 못하고……” 라는 내용으로 보아 병석에 누운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신을 삼았으나 신어 보지도 못하고 죽자 미투리를 남편과 함께 묻어 준 것으로 짐작된다.
여자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삼는 것은 안동시 풍산읍 오미마을에 세거하는 풍산김씨(豊山金氏) 집안의 『허백당세적(虛白堂世蹟)』에 그 일화가 전해진다. ‘오미(五美)’란 마을 이름은 김대현(金大賢, 1553~1632)의 아들 8형제가 소과(小科)에 합격하고, 그들 가운데 다섯 명이 대과(大科)에 합격한 후 당시의 임금 인조(仁祖)가 내려 준 것이다.
김대현은 산음(山陰, 현재의 경남 산청군) 현감으로 재직하다가 죽었는데, 산음 사람들이 김대현의 시신을 오미동까지 운구해 주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른 뒤 부인이 “나는 지난봄, 너희 아버지의 장례를 도와 준 산음 사람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신발을 만들었다. 이것은 내 정성의 표시이니 그분들께 갖다 드려라.” 하므로 아들이 신발을 산음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산음 사람들이 작은 사당을 지어 이 신발을 보관하다가 1870년대 어느 날 돌려주니, 김대현의 무덤 옆에 묻었다.
이로 보아 조선시대 부녀자들은 자신이 다 갚을 수 없는 은혜에 보답하거나 무엇을 간절히 기원할 때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신을 만들고, 이로써 자신의 정성과 소망을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2. 꿈속에서라도 당신 모습 보여 주세요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죽은 남편을 따뜻하게 품어 주기라도 하듯 가슴을 덮고 있던 아내의 편지.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등의 애틋한 내용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이 서신을 통해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찾을 수 있었다. 서신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자네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임진왜란 전까지의 사회에서는 부부가 대등한 관계였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인을 감동시키다]
이응태 무덤에서 나온 편지와 미투리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을 통해 우리는 조선 중기 양반가 부부의 일상생활과 애절한 사랑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발굴 직후 KBS TV 추적미스터리 ‘미라 그것이 알고 싶다’(1998년 5월 28일)와 역사스페셜 ‘조선판 사랑과 영혼’(1998년 12월 12일) 등에 상세히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연극·소설·그림 등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병든 남편의 쾌유를 기원하며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을 섞어서 만든 미투리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저널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와 고고학 잡지 『앤티쿼티』 2009년 3월호(표지에도 함께 소개됨), 중국 CCTV-4 등에 소개되어 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400여 년 전 남편의 죽음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부부의 사랑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이응태 부부의 가슴 저미도록 애절한 사랑에 감동한 하늘의 뜻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