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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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 |
영어의미역 | Prehistoric |
분야 | 역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길경택 |
[정의]
문헌에 기록되기 이전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개설]
우리나라에 있어 선사시대라 함은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그리고 초기 철기시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며, 약 70만 년 전부터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역사시대는 우리나라의 경우 서력기원 전후인 삼국시대 형성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약 2,000년간을 가리킨다.
충주를 중심으로 한 중원 문화권 지역은 백두대간을 축으로 한 남한강과 금강의 중·상류 지역에 위치하며, 석회암 지대가 잘 발달되어 있는 곳이기에 선사시대의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전국의 어느 문화권 지역보다도 선사 문화가 발달하였고 구석기시대에서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중원 문화권 지역에서 선사 문화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62년 제천시 청풍 황석리 고인돌 유적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발굴되면서부터이나, 본격적인 조사는 1973년 연세대학교박물관에 의한 제천 점말 용굴유적의 발굴부터라 할 수 있다. 그 후 충주댐 수몰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되면서, 이 지역의 선사 문화에 대한 실체에 보다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구석기시대]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굴 조사된 곳은 전국적으로 약 40곳이다. 이 가운데 중원 문화권 지역에서는 10곳이 넘는 유적이 발굴 조사되었는데, 이는 약 25%를 차지하는 것이다. 동굴 유적으로는 단양군 매포읍 도담리에 있는 금굴 유적, 상시리에 있는 상시 바위그늘 유적, 가곡면 여천리에 있는 구낭굴유적,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에 위치한 점말 용굴유적, 청원군 가덕면의 두루봉 동굴 유적 등 5곳이 있다. 한데 유적으로는 청원군 문의면의 샘골 유적, 충주시 동량면의 창내 유적, 명오리 큰길가 유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의 수양개 유적, 충주 용탄동 유적, 금능동 유적 등 6곳을 들 수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구석기 유적 가운데 1/4에 가까운 수의 유적이 중원 문화권 지역 내에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이들 각 유적들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 정도의 좋은 유물과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중원 지방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적 특색이라 할 수 있으며, 당시의 생활 조건을 고려할 때 이 지방이 사람살기에 적합하였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구석기 유적을 통하여 보면 중원은 결코 주변부가 아니고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즉 금굴 1·2문화층을 전기 구석기라고 인정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중원 지방은 인간의 숨결을 느꼈으며, 그것도 시대별로 연연히 이어져서 계속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삼국시대까지 정도만을 중원의 역사라고 보던 시각을 약 70만 년 전 금굴에 살았던 전기 구석기인까지로 확대한 것이고, 또 이것이 중기 구석기, 후기 구석기로 이어지는 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특히 수양개 유적에서 보이는 후기 구석기인은 세계적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또 평양 부근에는 동굴 유적이 집중 분포하고 있고, 임진강 유역이나 그 밖의 지방에는 한데 유적이 있는데 비하여, 이 중원 지방에는 동굴 유적과 한데 유적이 고루 존재하여 풍부한 문화적 해석거리를 제공한다. 이는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중원 지방만의 독특한 성격이라 하겠다. 중원 지방의 구석기 연구는 지리적으로도 대륙과 일본 열도에 연결되는 중간적 위치에 있는 까닭에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 구석기 학계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화적 의의를 가진다고 하겠다.
[중석기시대]
빙하시대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자 사람들은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게 되었다. 즉 세석기를 다량으로 생산하여 이를 나무 같은데 끼워서 화살과 같은 복합 도구를 만들어 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기를 보통 중석기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중석기시대는 B.C. 12,000년 전에 끝난 구석기시대와 B.C. 8,000년 경에 시작된 신석기시대 사이의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시대이기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중석기시대에 속하는 유적으로는 중원 문화권 내의 단양 금굴의 5문화층과 공주 석장리의 최상층, 경상남도 상노대도의 최하층, 주암댐 수몰 지역인 곡천 유적의 Ⅳ층 등을 들 수 있으나 그 내용은 빈약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인 1991년 5월 강원도 홍천군 하화계리 홍천강변에서 강원대학교 박물관이 3㎝ 미만의 세석기가 1,000 여 점 이상 출토되는 중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을 발굴하였는데, 이러한 것들이 앞으로 중석기시대를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한반도 안에서 현재 알려진 곳이 200곳이 넘는다. 당시 한국인의 조상들이 살고 있던 만주 지방의 유적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훨씬 증가하는 셈이다. 그러나 유적의 대부분은 지표 조사에 그칠 뿐 발굴 조사된 곳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신석기시대는 그 문화의 발전 과정이나 연대에 대하여 아직 확고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원 문화권 지역 내에서 더욱 심하여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 발굴 조사된 유적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 있어 신석기시대는 B.C. 8,000년 경에 시작되어 B.C. 1,000년경에 끝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연구가 진행될수록 시작과 끝난 시기가 더 오래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중원 문화권 지역은 한반도의 중간 지대에 위치하는 까닭에 각 문화의 교류와 전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이다. 그렇지만 신석기시대에 대해서는 연구가 거의 진척되지 못하였다. 또한 중원 지방에서 신석기 유적으로 알려진 곳은 지표 조사의 성격을 띠었을 뿐이고, 발굴이 된 곳이라 하여도 주된 문화층이 아니었던 까닭에 간과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까지 중원 지역에서 신석기 유적으로 알려진 곳은 모두 25곳에 이른다. 이들 유적은 남한강 유역, 금강 유역, 기타 내륙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유적 중 특히 주목을 끄는 곳은 충주 조동리 유적과 옥천의 대천리 유적, 영동군 심천면 금정리 유적이다. 중원 문화권의 신석기시대 유적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남한강 유역에는 상시 바위그늘 유적, 황석리 B지구, 단양 금굴, 양평리 B지구, 단양 수양개, 황석 A지구, 제천 광의리 A지구, 진목리 A·B지구, 사기리 C지구(창내), 명서리 지구, 도화리 지구, 함암리 지구, 하천리 D지구, 하천리 F지구, 지동리 A지구, 동량면 조동리 등지에서 신석기 유적이 조사되었다. 금강 유역에는 청원 아득이, 옥천 안터, 막지리, 대천리와, 영동 원촌리, 금정리 등지에서 신석기 유적이 조사되었다. 기타 내륙 지역에는 청주 우암산, 상당산성, 제천 점말용굴, 진천 등지에서 신석기 유적이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중원 지방에서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은 민무늬토기를 출토하는 유적과 고인돌·선돌로 대표되는 큰돌문화 유적 등을 포함하여 300여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직접적인 청동기를 출토하는 유적은 청주 비하동과 옥천 동이면 석탄리 2곳 뿐이나, 정식 발굴을 통해 청동기시대 집터를 확인한 곳이 7곳, 고인돌이 발굴된 곳이 13곳의 57기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 충주댐과 대청댐 수몰 지역에 대한 조사와 중부고속도로 건설 시 조사된 것들로 청동기시대 전 시기에 걸친 것들이다. 중원 문화권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발굴된 곳은 다음과 같다.
남한강 유역에서는 충주 지동리, 하천리, 조동리, 명오리, 함암리, 단양 금굴, 상시, 제천 계산리, 양평리 A지구, 양평리 B지구, 광의리, 황석리, 진목리, 방흥리 등지에서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었다. 금강 유역에서는 영동 유전리, 옥천 안터, 청원 아득이 등지에서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었다. 기타 내륙 지역에서는 음성 양덕리, 청주 내곡동, 향정동, 비하동 등지에서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들 유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충주의 조동리 유적과 제천 황석리 고인돌, 청주 내곡동 집터 유적 등이 있다.
이렇게 중원 문화권 지역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 유적은 한국사에 있어 청동기시대를 보다 명확히 밝힐 수 있는 넓은 폭을 제공하였고, 그 문화 성격을 밝힐 수 있는 실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충주를 중심으로 하는 중원 문화권 지역은 각 지방 문화를 전달하는 통로로써 뿐만 아니라 각 지방의 문화를 복합·발전시켜 독특하게 조화된 것으로 발전시키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철기시대]
중원 지방에 나타나는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은 충주댐 수몰 지역 문화유적 조사시 발굴된 중원군 동량면 지동리 유적이 유일한 것이다. 지동리 유적에서는 적석널무덤 4기가 발굴되었는데, 표토 밑에 50~60㎝의 널을 판 뒤 25㎝ 정도 두께로 진흙을 다진 다음 그 위에 주검을 안치시키고, 흙으로 덮고 20~30㎝ 크기의 강돌을 사용해 그 위를 덮는 축조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널무덤에서는 철 화살촉 2점과 승석문이 있는 와질토기편 등이 출토되었고, 주변에서 민무늬토기 조각도 다량 수습하였다. 그밖에 제천군 청풍면 양평리와 도화리에서는 돌무지무덤이 조사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김해식토기 조각이 함께 출토된 원삼국시대의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