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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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焄 |
영어공식명칭 | Song H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삼조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4월 22일 - 송훈 대구 금연상채회 회장 선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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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민족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금연상채회 회장 |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개설]
송훈(宋焄)[?~?]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사(廣文社) 내 문회(文會)는 특별총회를 열어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명칭을 변경하고 국채보상운동을 결의하였다. 1907년 2월 17일 광문사 사장이자 대동광문회 부회장이던 김광제(金光濟), 광문사 부사장 서상돈(徐相敦), 대동광문회장 박해령(朴海齡) 등을 중심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위한 조직으로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와 대구민의소(大邱民議所)가 설립되었다. 이후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가 『제국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리면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송훈은 이현주(李玄澍)에 이어 4월 22일 금연상채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금연상채회는 국채보상운동의 규모를 확대하고자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국채보상도총회를 결성하는 등 대구·경북 지방의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