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0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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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秋敎廷 |
영어공식명칭 | Choo Gyoje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일수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추교정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 발기인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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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07년 2월 21일 - 추교정 금연상채회 설립 주도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민족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대동광문회 회원 |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개설]
추교정(秋敎廷)[?~?]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주도하였다.
[활동 사항]
1907년 대구에서 광문사(廣文社)와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가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 1907년 2월 17일 대동광문회 회원이었던 추교정은 광문사 사장이자 대동광문회 부회장이던 김광제(金光濟), 광문사 부사장 서상돈(徐相敦), 대동광문회장 박해령(朴海齡)을 비롯한 회원 김병순(金炳淳)·장상철(長相轍)·강신규(姜信圭)·강영주(姜永周)·김우근(金遇根)·서병오(徐丙五)·심정섭(沈廷燮)·윤하선(尹夏璿)·정재덕(鄭在悳)·이종정(李鍾楨)·길영수(吉永洙)·이우열(李遇烈)·정규옥(鄭圭鈺) 등과 함께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 설립을 주도하였다. 또한 대구 북후정(北堠亭)에서 대구군민대회를 개최하여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를 공표하고 국채 보상에 필요한 모금 활동을 결의하였다. 이후 추교정이 발기인 13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한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가 『제국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리면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