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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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拳銃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16년 9월 대구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벌인 독립운동.
[역사적 배경]
정운일(鄭雲馹), 김재열(金在烈), 최병규(崔丙圭), 최준명(崔俊明) 등은 1915년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대구의 부호 서창규(徐昌圭)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받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15년 11월 무렵 정운일, 최병규, 김진우 등은 대구의 부호 정재학(鄭在學), 이장우(李章雨), 서우순(徐祐淳) 등에게 각각 5만 원, 2만 원, 3만 원의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대구의 부호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내놓지 않아 독립운동 자금 마련이 여의치 않던 중 김진만, 김진우, 정운일, 최준명 등은 김진만의 장인 서우순의 집에 현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과]
1916년 8월 정운일의 집에 최병규, 최준명, 김진만과 김진만의 아우 김진우, 이시영, 김재열 그리고 광복회 회원 권국필, 임병하, 서우순의 아들 서상준 등이 모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거사일로 잡은 1916년 9월 3일 김진만, 정운일, 최병규, 김진우 등은 서우순의 집 담을 넘어 서우순이 자고 있던 방에 들어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려 하였다. 그때 인기척에 놀란 서우순이 지른 비명에 집사 우도길이 달려 나오자 김진우(金鎭瑀)가 권총을 발사하여 머슴을 쓰러뜨렸다.
[결과]
최병규의 고무신 한 짝이 서우순의 집 담벼락 밑에 남겨진 것이 단서가 되어 관련자 모두 일제 관헌에 체포되었고 대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재판에 넘겨졌다. ‘애국단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을 일경은 ‘대구권총사건(大邱拳銃事件)’이라고 하였다. 대구권총사건에 연루된 김진만, 김진우, 정운일, 최병규, 권국필, 임병하, 최준명, 이시영, 김재열, 홍주일 등은 1917년 6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에서 4개월의 징역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구권총사건을 일으킨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공을 인정받아 김진만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김진우·정운일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의의와 평가]
1910년대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국내 독립운동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인 대구권총사건은 민족 독립운동의 고양에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