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627
한자 李鐵堅 神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돌미로 58[교항리 2963]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동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97년연표보기 - 이철견신도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435년 - 이철견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496년 - 이철견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1995년 5월 12일연표보기 - 이철견신도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이철견신도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재지정
원 소재지 이철견신도비 -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산723
현 소재지 이철견신도비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2963 (돌미로 58)
성격 신도비
관련 인물 이철견
재질 화강석[비좌]|대리석[비신, 개석]
크기(높이) 145㎝[총높이]|83㎝[너비]|21㎝[두께]
관리자 경주 이씨 양평공파 종친회
문화재 지정 번호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2963 (돌미로 58)에 있는 조선 전기 이철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개설]

이철견(李鐵堅)[1435~1496]은 본관이 경주이고, 자는 연부(鍊夫),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1466년(세조 12) 임시 과거인 등준시(登俊試)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훈련원 도정이 되었고, 1468년 경기도 관찰사에 이르렀다. 1487년 전횡이 심하다는 탄핵을 받고 사직하였다가, 1495년(연산군 1) 의금부 지사에 복직되었다. 세조에서 연산군 재위 기간 의금부사·오위도총부 총관·호조 판서·경상도 관찰사·한성 판윤 등을 지냈으며,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철견신도비(李鐵堅神道碑)는 조선 전기의 공신인 이철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1497년(연산군 3)에 건립되었다.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위치와 현황]

이철견신도비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2963 (돌미로 58)에 위치하고 있다. 옥포읍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옥포 지구 내에는 4호 근린 공원이 있는데, 이곳의 비각 안에 비가 있다. 비각의 앞쪽에는 천년 나무 아파트 310동이 위치하고 있다. 처음 비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산723번지에 있었는데, 1969년 도시 계획에 따라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원래 이철견신도비가 자리한 곳은 경주 이씨 양평공파 묘역으로 이철견의 묘도 이곳에 함께 있었으나, 옥포 지구의 대규모 아파트 건립에 의해 경주 이씨 양평공파 묘역은 2006년 03월 달성군 논공읍 남리 산120-1번지로 이장되고, 현재는 신도비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전체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편이나, 전면에만 있는 비문은 일부 마멸이 있다.

[형태]

비는 장방형의 비좌 위에 비신과 하엽형(荷葉形)의 개석(蓋石)을 올린 형태이다. 비신과 개석은 한 돌로 되어 있으며, 재질은 대리석이다. 비좌의 재질은 화강석으로 상면에는 복련이 새겨져 있다. 규모는 총높이 145㎝, 너비 83㎝, 두께 21㎝이다.

[금석문]

전면 전액에 '양평 이공 신도비명(襄平李公神道碑銘)'이라 적혀 있다. 전면에 비문이 있는데, 최진욱이 판독하고 노효경이 해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명조선국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월성군(月城君) 증시(贈諡) 양평(襄平) 이공(李公)의 신도비명 : 서문을 아울러 기록하였다.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 겸 동지경연사 지춘추관 의금부사 예문관 제학 홍귀달(洪貴達)은 비문을 짓고,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 참판 겸 동지춘추관사 안침(安琛)은 비문의 글씨를 쓰고 아울러 전액(篆額)을 하다.

홍치(弘治) 9년[1496년] 5월 임자일에 월성(月城) 이 공이 사망하여, 그해 9월에 금천(衿川) 동면(東面) 봉천리(奉天里)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그 이듬해 여름에 그의 아들이 비석을 세우고자 하여 소매 속에 공의 행장(行狀)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비문을 요청하며 말하기를, “우리 선공(先公)의 평소 행적과 사업은 오직 공만이 알고 있으니, 명문(銘文)을 짓기에 적임자이십니다.” 하였다.

삼가 살피건대, 공의 이름은 철견(鐵堅)이요, 자(字)는 연부(鍊夫)이다. 증조부인 원보(元普)는 지인주사(知仁州事)를 지내고 이조 참의에 증직되었으며, 할아버지인 승(昇)은 전농판관(典農判官)을 지내고 이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아버지인 연손(延孫)은 공조 참판을 지냈고,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윤씨(尹氏)로 우의정에 증직된 윤번(尹璠)의 따님이며 세조 대왕의 비인 정희 왕후(貞熹王后)의 언니이다. 공은 재주와 기량이 남달라서 세조 임금의 돌보심과 예우(禮遇)가 특별히 융숭하였고, 예종 임금과 성종 임금을 거쳐 우리 성조(聖朝)에 미칠 때까지 은택(恩澤)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 부귀하게 일생을 마쳤으니, 아! 성대하다.

공은 처음에 헌릉지기[獻陵直]가 되어 여러 차례 관직을 옮겨 사헌부 감찰에 이르렀다가 충청도 도사(都事), 한성부 판관에 천전(遷轉)되었다. 두 번 무과에 급제하여 번번이 지위와 녹봉이 더해졌고, 선전관이 되고 내승(內乘)이 되었는데 왕명을 출납하고 주선(周旋)하는 것이 임금의 뜻에 맞았다. 통정대부(通政大夫) 훈련원 도정에 올랐다. 얼마 뒤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곧바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가자(加資)되어 평안서도 절도사가 되었으며, 조정으로 들어와서 지중추부사 겸 지의금부사가 되었다. 성종 임금 초반에 임금을 잘 보좌하고 나라를 잘 다스린 공로가 있어 공신의 칭호를 하사하고 전토(田土)와 노비를 부상(副賞)으로 주었다.

공은 일찍부터 군율(軍律)을 익혔다. 성상(聖上)이 일찍이 동교(東郊)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사열(査閱)할 때 공을 대장(大將)으로 삼았는데 호령(號令)이 엄명(嚴明)하고 군사들의 훈련하는 절차가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 성상이 이 일을 가상하게 여겨 특별히 안마(鞍馬)를 하사하여 칭찬하였다. 그 뒤로 군대를 사열할 때마다 반드시 공을 대장으로 명하였는데, 위에서 말한 것과 같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이 삼도(三道)의 관찰사를 지낼 때에는 관리에 대한 평가가 엄명하였으며, 양조(兩曹)에서 판서를 지낼 때에는 모든 사무가 바로잡혔다. 금군(禁軍)을 총괄하고 사헌부의 대사헌이 되자 군대의 위엄이 확립되고 조정의 기강이 엄숙해졌으며, 두 차례 한성부 판윤을 지내고 승문원 제조가 되자 교활한 관리가 숨을 죽이고 모든 벼슬아치들이 의젓해졌다. 의금부에서 죄인을 신문(訊問)하고 농민의 사정을 헤아리며 이주한 백성을 위무(慰撫)하고 성루(城壘)를 쌓아서 임금이 위임한 뜻에 특별히 응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으며 모두 다 기록할 만한 실적이 있었다.

아! 세조 임금과 성종 임금이 영웅을 모아들이고 문관과 무관을 신임하여 썼으므로 문관과 무장이 수두룩하였으나 각각 한쪽에만 능력이 있었지 공처럼 재주와 능력을 겸비해서 상황에 따라 알맞게 적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은택(恩澤)을 받은 것이 융성하고 높은 작위를 받았으니, 이는 행운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다. 공의 성품은 온화하고 후덕하여 동네의 종족(宗族)과 친구들이 좋은 일이나 궂은 일, 경사나 상사(喪事)를 당하며 마음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공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도 더할 나위 없이 지극하였다. 공은 모습이 총명하고 늠름하여 말씨와 행동거지를 대하는 사람마다 모두 장수나 재상이 될 기량임을 알았다.

공은 처음 생원 윤자렴(尹子濂)의 딸에게 장가들어 딸 하나를 낳았는데, 강서 현령 허효순(許孝舜)에게 출가하였다. 나중에 현감 이영상(李永祥)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이름은 성정(成楨)으로 지금 종친부 전부(典簿)이다. 첩 하나가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이름은 윤정(允楨)으로 대호군(大護軍)이고, 한 첩이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이름은 안정(安楨)이며, 한 첩이 아들 둘을 낳았는데 장남은 익정(益楨)이고 차남은 극정(克楨)으로 모두 어리다. 강서 현령은 아들 다섯을 낳았는데 장남은 윤관(允寬)으로 목청전(穆淸殿) 참봉이고, 다음은 윤홍(允弘)이며, 다음은 윤굉(允宏)이고, 다음은 윤평(允平)이며, 다음은 윤문(允文)이다. 전부는 부정(副正) 안온천(安溫泉)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넷을 낳았는데 완(琬)과 경(瓊)과 영(瑛)과 호(瑚)이다. 나 귀달(貴達)은 공과 사는 곳이 서로 가까웠고 또 의정부(議政府)와 의금부(義禁府)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여서 오래 사귀여 온 정분(情分)이 아주 돈독하였다. 그 때문에 그의 아들이 나에게 와서 비문을 요청한 것이니, 감히 사양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서문(序文)을 쓰고 비명으로 삼는다.

명문(銘文)에 이르기를, 찬란한 우리 동방(東方)에/ 훌륭한 분이 탄생하시니/ 세묘(世廟)[세조]께서 나라를 재차 세우시고/ 정희 왕후(貞熹王后)께서 함께 도왔네/ 마침내 외척(外戚)을 돌아보시고/ 특별히 선발하시니/성실한 이공(李公)만이 유일하였네/ 호랑이 같은 귀인(貴人)의 형상과 소를 먹을 만한 기개가 있고/ 원숭이처럼 용맹하여 이(蝨)의 심장을 꿰뚫었네/ 왕께서 이공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나의 수족(手足)이며/ 또한 나의 심복(心腹)이니/ 비범한 친속(親屬)이다/ 내가 그대의 능력에 보답하여/작록(爵祿)을 소유하도록 하겠다” 하고,/ 갑자기 머리와 허리에/ 황금과 백옥을 두르니/ 공이 머리 조아려 절을 하고/ 더욱 돈독히 충성을 바쳤다/여러 임금을 두루 섬기어/ 총애가 더욱 빛났다/ 성묘(成廟)[성종]께서 즉위하여/ 26년을 재위하는 동안/ 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니/ 노고(勞苦)하고 공적(功績)을 세워/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니/ 충성스런 마음이 해처럼 빛났다/ 지위는 삼공(三公)에 가까워가고/ 나이는 겨우 육순이 되어/ 한창 명망(名望)이 드높았는데/ 갑자기 하늘이 불러 갔네/ 나라의 남쪽에 한 고을이 있어/ 그 땅이 길지(吉地)라고 하므로/ 집처럼 봉분(封墳)을 만들고/ 이 건장한 뼈를 숨긴다/ 죽지 않는 비석이 남아 있게 되어/ 나의 글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홍치(弘治) 10년인 정사년[1497년] 8월 일에 비석을 세우다.[有明朝鮮國純誠佐理功臣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月城君 贈謚襄平李公神道碑銘幷序 資憲大夫知中樞府事兼同知經筵事知春秋館義禁府事藝文館提學洪貴達選 嘉善大夫吏曺參判兼同知春秋館事安琛書幷篆額 弘治九年五月壬子月城李公卒其年九月葬于衿川東面奉天里之原越明年夏其孤將立石袖公行狀來請予曰吾先公平生行與事惟公悉之宜爲銘謹按公諱鐵堅字鍊夫曾祖元普知仁州事贈吏曺參議祖昇典農判官贈吏曺參判考延孫工曺參判妣貞夫人尹氏贈若議政尹璠之女 世祖大王妃貞熹王后之姊公才器異常 世祖眷遇特隆歷 睿宗成宗及我聖朝恩澤不少衰富貴終其身吁盛矣哉 公初爲獻陵直累遷至司憲監察轉忠淸道都事漢城府判官再捿武科輙增班資爲宣傳官爲內乘出納周旋稱旨進通政大夫訓鍊都正俄陞嘉善旋加資憲大夫平安西道節慶使入爲知中樞兼知義禁府事 成宗初有佐理勳冊賜功臣號副以土田藏獲公夙慣師律 上嘗大閱于東郊公爲大將號令嚴明凡進退坐作之節無少差違 上嘉之特賜鞍馬以賞之後凡遇閱武命將必以公無不如上云公觀察三道黜陟明判書兩曺庶務釐都摠禁旅領袖臺憲而軍威整朝綱肅再判京兆貳公槐府而姦猾懾搢紳儀至於淑問金吾量度田民安撫徙民相築城壘特膺委寄者非一皆有實跡可紀焉嗚呼 世祖成宗之收攬英雄柄用文武而文吏武將肩相磨然各有偏長未見有才兼能備隨處適用如公者恩澤之隆爵位之顯非幸也宜也公性和厚凡閭里宗族朋友吉凶慶弔無不盡心焉故人之報之亦無所不至公儀表英毅言談擧止遇之皆知爲將相器先娵生員尹子濂之女生一女適江西縣令許孝舜後娵縣監李永祥之女生一男曰成楨今爲宗親府典簿一妾生一男曰允楨大護軍一妾生一男曰安楨一妾生二男長益楨次克楨皆幼江西生五男長允寬 穆淸殿參奉次允弘次允宏次允平次允文典簿娵副正安溫泉之女生四男曰琬曰瓊曰瑛曰瑚貴達與公居止相近又忝政府金吾僚故情甚款於冀孤之來求文也敢辭諸乎乃序而銘之曰 於皇我東 聖神誕作 世廟再造 貞熹與力 乃眷戚畹 有偏其澤 蹶蹶李侯 維夫之特 虎頭食牛 猿臂貫風 王謂李侯 汝吾手足 亦吾心腹 匪凡親屬 予酬爾能 予有爵祿 焂忽頭腰 黃金白玉 公拜稽首 輸忠益篤 歷事累朝 寵章彌赫 成廟臨御 年卄又六 出將入相 劬勞勛績 與國休戚 丹心白日 位逼三台 齒僅六袠 方隆物望 遽爾天奪 國南有縣 其地云吉 封之若堂 秘此壯骨 不死者存 庶托吾筆 弘治十年丁巳八月 日立]"

[의의와 평가]

이철견신도비는 하엽형의 개석을 하고 있어 조선 전기 신도비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금석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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